유럽서 호평받는 조각가 박은선 "한국인 정체성이 내 작품의 힘"
안드레아 보첼리 소유 고급 비치클럽서 조각전…유수 컬렉터 운집
보첼리도 먼저 다가와 축하 인사…30년 노력으로 쌓은 위상 확인
"예술은 진실만 통하는 마라톤"…코로나 딛고 본격 활동 재개 의지
(포르테 데이 마르미<이탈리아>=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의 부유층이 많이 찾는 토스카나주 해변 마을 포르테 데이 마르미(Forte dei Marmi).
'대리석의 요새'라는 뜻을 가진 이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드넓은 백사장을 가진 아름다운 바다를 끼고 늘어선 고급 비치클럽 때문이다. 여름만 되면 마을 인구 세배인 2만명가량의 유럽 상류층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중에서도 단연 명소는 세계적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가족이 소유한 비치클럽이다. 전 세계 명사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사교 모임을 하는 장소다.
이 보첼리의 비치클럽이 19일(현지시간) 오롯이 한국 조각가 박은선(56)을 위해 개방됐다. 클럽 내 곳곳에는 박 작가가 제작한 대형 작품이 설치돼 눈길을 사로잡았고 박 작가는 쉴새 없이 밀려드는 손님 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이탈리아 3대 갤러리 가운데 하나인 콘티니(Contini) 아트 갤러리가 기획하고 보첼리가 주최한 박은선 조각전 '바다에서 무한으로'(Dal Mare All'infinito) 개막식에 초대된 이들이다. 조각계 큰 손으로 통하는 유수 컬렉터들과 박 작가 작품 애호가들도 다수 포함됐다.
만찬이 막 시작되고 느지막이 비치클럽에 모습을 드러낸 보첼리도 부인과 함께 먼저 박 작가가 있는 테이블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박 작가가 지난 30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세계 조각 예술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서 28년을 지낸 박 작가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동양인 조각가 가운데 한 명이다.
동양과 서양의 예술적 감성을 조화롭게 연결하고 여백이 담긴 추상적 동양미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 세계에 유럽인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박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 또는 '박은선'으로서의 정체성을 꾸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여낸 게 유럽인들의 마음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작년 2월 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예정된 전시가 취소되며 한동안 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으나 이를 계기로 작업장을 지키며 열정 가득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값진 경험을 했다고 돌아봤다.
'예술은 오직 진실만 통하는 마라톤'이라는 지론을 밝힌 박 작가는 "전 세계에서 많은 전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본격적인 대외 활동 재개 의지를 드러냈다. "단단해지고 싶다", "이제 나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등의 말에서 묻어나오는 다부진 자신감이 그의 향후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다음은 박 작가와의 일문일답.
--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 의미 있는 전시를 하게 된 소감은.
▲ 최근 10여 년간 유럽과 미국 등에서 정신없이 많은 전시 초대를 받아 작업장 밖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듯하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로 전시들이 발목을 잡혔다. 처음에는 힘든 날들이었지만 30년 전 초심으로 돌아간 듯 매일매일 작업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차츰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1년 반 동안 집과 작업장만 오가면서 '아! 이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됐다. 작품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시도를 한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 이번 전시 행사를 통해 이탈리아인들이 박 작가의 작품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열광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 전통적인 재료를 버리지 않고 30년간 한결같이 같은 재료로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려 했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보는 자연의 색상과 익숙한 형상이 이질감 없이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해주고 대리석의 성질과 같이 부지런함과 치밀함, 정직함이 배어 있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 세계 조각 예술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피에트라산타에 정착한 지 벌써 28년이 됐다.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피땀 어린 노력 끝에 세계적인 조각가의 위상을 확보했는데 지난 28년의 소회를 들어보고 싶다.
▲ 벌써 그렇게 세월이 지났나 싶다. 아직도 28년 전 29살에 멎은 상태인듯하다. 작업장에 자신을 가두고 지내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파악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부터 가끔 어떤 어르신들이 나를 찾아온다. 어려웠던 시절 대리석 살 돈이 부족해 구걸하다시피 사정해서 싸게 사들이곤 했는데 당시 그 대리석 공장 사장들이다. 이들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를 접하며 진짜 30년 전 그 한국인 조각가가 맞나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거다. 그들이 내가 유명 조각가가 된 것에 고마워하고 대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 1993년 피에트라산타에 정착했을 때만 해도 주변 환경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버텼나.
▲ 1993년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을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후진국 정도로 생각했다. 어디를 가나 무시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짐을 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조깅을 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하지만 이걸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참고 또 참았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가 그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화를 억누르고 작업에 전념했다.
-- 동양과 서양의 조화, 여백이 숨 쉬는 추상적 동양미 등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하다.
▲ 처음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작품에 담고자 많이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것이 부질없는 것이라 느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랐고 한국인 선생님 아래 인생을 배웠는데 뭘 더 찾아야 하나 생각했다. 아마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든 난 분명한 한국인이고 그 누구도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위, 내가 제작한 작품들은 무조건 한국적이거나 박은선의 정체성이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 있게 활동했다. 그러자 유럽인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작품의 꾸며진 형태보다 나의 자연스러운 행위에 더 공감한 거다.
-- 이탈리아가 활동의 거점이긴 하지만 시민권을 갖지 않고 평생 한국 국민으로 남겠다고 했다.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아쉬워할 거 같기도 하다. 당장 두 아들 군대 문제도 있는데 어떤 배경에서 그런 결심을 했나.
▲ 시민권을 받을 기회는 있었지만, 신청하지 않았다. 두 아들도 군대에 가길 원했다. 처음엔 강요했는데 반발이 심하더라. 그래서 설득하기 시작했다. 방학 땐 한국에 보내 한국의 위상과 한국의 피를 느끼게 해줬다.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군대에 가겠다고 하더라. 이제는 언제 갈 건지 스스로 결정할 일만 남았다. 나를 이처럼 한국인으로 남게 한 것은 애국심인 거 같다. 한국에 살면서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는데 외국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겼다. 조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마 나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요즘은 한국의 위상이 세계로 뻗어가며 내가 가야 하는 길이 많이 쉬워진 듯하다. 내 것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기며 살았기에 유럽에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 한국 조각의 위상을 몇 단계는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배 조각가들에게도 귀감이 되는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 후배 작가들에게 '진실하게 자기 자신과 솔직한 대화를 자주 해봐라. 그러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라고 항상 얘기한다. 예술은 꾸미는 게 아니다. 솔직한 자기표현이다. 이를 먼저 경험한 선배 예술가들은 알고 있다. 예술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꾸밈이 아닌 오직 진실만 통하는 마라톤이다.
--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면서 이제 본격적인 활동이 가능해지는 분위기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전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부러지고 싶지 않다. 단단해지고 싶다. 더 많은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할듯하다. 이제 나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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