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4대 가상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심사 착수
케뱅·농협·신한,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서면평가 시작
나머지 거래소 "은행들이 만나주지도 않아"…'무더기 폐쇄' 현실로
(서울=연합뉴스) 금융팀 = 바뀐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소의 명줄을 쥔 은행권이 4대 가상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실명계좌를 내줘도 좋을지' 판단하기 위한 검증에 들어갔다.
자금세탁 사고 등의 위험과 가상화폐에 대한 금융당국의 모호한 태도 탓에 지금까지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던 은행이 마침내 가상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검토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평가가 시작됐다는 사실만으로 4대 거래소의 실명계좌 재계약 기대는 커졌지만, 여전히 신중한 은행권의 태도로 미뤄 아직 '4대 거래소 전원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4대 거래소를 제외한 나머지 수십개 거래소 대부분은 여전히 검증을 해줄 은행조차 찾지 못한 상태로, '무더기 폐쇄'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자료 받아 서면 평가 시작"…법적요건·위법여부 확인 단계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뱅크, NH농협은행, 신한은행은 현재 실명계좌 제휴 관계인 각 업비트, 빗썸·코인원, 코빗에 대해 '가상자산 사업자(가상화폐 거래소) 자금세탁 위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달부터 업비트와 평가 준비를 시작해 최근 본격적으로 서면 중심의 심사에 들어갔고, 신한은행도 이달 초부터 코빗을 서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농협은행도 빗썸과 코인원으로부터 각 지난 17일, 지난달 말 평가를 위한 자료를 넘겨받아 막 서면 평가를 시작했다.
앞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권이 마련한 '위험평가 방안' 가이드라인(지침)에 따르면, 이들 은행은 현재 '필수 요건 점검'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계에서 은행은 해당 거래소의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여부, 금융관련법률 위반 여부, 고객별 거래내역 구분·관리 여부 등 법적 요건이나 부도·회생·영업정지 이력, 거래소 대표자·임직원의 횡령·사기 연루 이력, 외부 해킹 발생 이력 등 사업연속성 관련 기타요건을 문서나 실사 등의 방법으로 들여다본다.
서면 평가 등을 통해 필수요건 점검이 마무리되면,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정량 평가) 자금세탁 위험과 내부통제 적정성 등을 평가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서면으로 먼저 예비평가를 하고 나면 실사를 포함한 본평가를 하고, 재계약 여부를 최종 판단할 예정"이라며 "두 거래소의 평가는 동시에 시작해 동시에 끝내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4대 거래소도 '불안'…감점 고려해 무더기 코인 상장폐지도
가상화폐 거래소(가상자산 사업자)들은 9월 24일까지 실명계좌 등 전제 조건을 갖춰 특금법 신고를 마치지 않으면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한다.
현재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받아 영업 중인 4대 거래소 역시 은행의 이번 검증을 통과해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하면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일단 평가가 시작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4대 거래소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래대금 1위의 업비트조차 투자자와 재단의 반발을 무릅쓰고 불과 1주일 사이 약 30개의 코인을 무더기로 상장 폐지하거나 원화 마켓에서 제거한 '사건'도 사실 검증과 관련된 절박함이 드러난 사례다. 은행의 실명계좌 검증 과정이나 특금법 신고 과정에서 이른바 잡코인이 많을수록 '안정성' 측면에서 감점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빗썸의 경우 최근 실질적 소유자가 사기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지는 등 지배구조상 불안 요소도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대주주 사기 혐의 검찰 송치 사실이 가상자산 사업자 제휴 거절 요건은 아니나, 위험 평가상 감점 요인이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 심사를 진행 중인 다른 은행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최소한 기존 실명계좌 제휴 거래소는 은행들이 살리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특금법 기준에 맞추자면 보완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거래소에 계속 보완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한까지 제대로 충족할 수 있을지는 지금 단언하기 어렵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거래소들 "은행, 만나주지도 않아. 당국 나서달라"…당국 "개입 불가"
그나마 은행 평가라도 받는 4대 거래소는 사정이 매우 좋은 편이다.
나머지 거래소 대부분은 실명계좌 발급을 상담하고 평가를 받을 은행조차 구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 3일 금융당국과 20개 거래소의 첫 간담회에서도 거래소들은 하나같이 "실명계좌 발급을 신청하려고 해도 은행들이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며 "금융위원회에서 좀 (은행들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 좀 해달라"고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20곳이 ISMS 인증을 받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거래소인데도 이런 상황이니 나머지 군소 거래소의 경우 사실상 은행 검증과 실명계좌 발급은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은행권과 업계의 시각이다.
10위권의 한 거래소 관계자는 "시중은행, 지방은행과 계속 소통하고 있다"며 "(은행) 내부기준을 통과해도, 은행이 시장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해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이미 주요 시중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 제휴를) 안 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해 계약이 어렵고, 소수 지방은행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도 "접촉하는 곳 중 주요 은행은 없고 지방은행 5∼6곳과 연락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연합뉴스 조사에 따르면 KB·하나·우리금융지주 등은 자금세탁 사고 연루 위험 등을 이유로 가상화폐 거래소 검증 작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사실상 내부 방침을 정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거래소들의 요구대로) 당국이 은행에 특정 거래소와 실명계좌 계약을 권유하는 것은 오히려 은행의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저해하는 행위일 수 있다"며 "형평성 문제도 있고, 법적으로도 은행 판단에 개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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