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자격 강화'에 은마 등 안전진단 통과단지 거래 '올스톱'
"입주권 못 받는 재건축 아파트 누가 사나"…아파트 주인들 불만
안전진단前 단지로 '풍선효과'…매수세 몰리면서 가격 올라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홍국기 기자 = 정부와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 조합원의 지위 양도 제한 시기를 사업 초기 단계로 앞당기기로 하면서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안전진단 통과 뒤에도 사업 진척이 더딘 단지가 수두룩한데 이번 조치로 거래가 꽉 막히면서 재산권 행사가 길게는 10∼20년 제약될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번 조치가 소급 입법이어서 위헌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안전진단 통과 전 단계인 단지에는 벌써 매수 문의가 늘어나는 등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부작용도 우려된다.
◇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시점 확 당긴다…"재산권 행사 10∼20년 제약·침해"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 지역의 투기수요 차단을 위해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시점을 앞당기기로 하면서 주요 재건축 단지, 재개발 지역 주택 보유자들의 불만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H 공인 대표는 "은마 등 재건축 아파트 주인들이 이제 사정이 생겨서 집을 팔려 해도 집을 팔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앞으로 재건축 단지는 안전진단 통과 이후부터, 재개발 구역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부터 시·도지사가 기준일을 별도로 정해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시점을 앞당길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은 조합설립 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되고 있는데, 이 시기를 훨씬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서울에서는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아파트를 사도 입주권을 받지 못하게 된다.
송파구 잠실동 A 공인 대표는 "지금 낡고 살기 불편해도 앞으로 새 아파트가 될 날을 기대하며 참고 거주하고 투자도 하는 건데, 조합원 자격이 나오지 않는 집을 누가 사겠느냐"며 "이런 걱정을 하는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가 끊기면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H 공인 대표는 "은마의 경우 2010년 안전진단 통과 후 11년이 지났지만, 조합 설립도 완료하지 못한 상태"라며 "재건축을 마치고 입주 후에야 집을 팔 수 있다면 앞으로 재건축 아파트는 10∼20년까지 재산권 행사가 제약되는 셈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대치동 C 공인 관계자도 "사실상 상당수 재건축 단지의 거래를 금지하는 효과가 나타날 텐데, 주인들은 만일 사정이 생겨서 집을 팔아야 하는 경우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화가 많이 났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국토부는 안전진단 통과나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 설립 이후 2년간 사업이 다음 단계로 진척되지 못했을 때 예외를 두기로 했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서울에서 강남구 삼성·대치·청담·압구정동, 송파구 잠실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양천구 목동, 성동구 성수동 등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목동 재건축 추진 아파트 보유자 D씨는 "투기를 잡겠다는 취지는 좋은데, 아무 잘못 없는 다수 국민이 너무 많은 규제로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받는 것 아닌가 싶다. 이런 부분에 대해 정부가 정말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장기보유자나 장기거주자 등 투기꾼이 아닌 선량한 국민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건축보다 사업 속도가 느린 재개발 추진 지역도 비슷한 분위기다.
성동구 성수정비전략구역 인근에서 영업하는 공인중개사는 "오 시장 취임 후 기대가 컸는데, 성수동이나 한남동 등의 재개발 구역도 이번 규제 적용 대상이 되면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9월 입법 전까지는 혼란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정책 도입을 주장한 오세훈 서울 시장에 대한 평가도 갈렸다. 오 시장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조치를 제안했다.
압구정동 주민 최모(41)씨는 "규제를 풀어준다고 해서 찍어줬더니 오히려 규제 허들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하는 주민이 많다"고 했다.
반면, 같은 동의 이모(44)씨는 "오 시장이 앞으로 재건축 추진에 속도를 내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이어 이번 투기 방지책을 꺼낸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재건축 초기 단지로 '풍선효과'…"규제 발표 후 매수세 더 강해져"
앞으로 안전진단을 통과한 아파트를 사도 분양권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전진단 통과 직전 단계 단지에는 매수세가 몰리며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달 8일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도봉구 창동 주공17단지 인근 B 공인 대표는 "9일 발표 이후 매수 문의가 늘어났다. 여기는 안전진단 통과 전이어서 조합원 지위 승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좋지 않은 조건의 매물도 시세가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49.94㎡는 4월까지만 해도 5억원대에 팔렸는데, 지난달 15일 6억2천500만원(12층), 이달 1일 6억4천700만원(3층)에 거래됐고, 지금은 6억5천만원에 1채 매물이 나와 있다.
아파트값 상승세가 뚜렷한 노원구에서는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1·3·9·11·13단지에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상계주공아파트는 1∼16단지 가운데 공무원 임대 아파트인 15단지와 재건축 사업을 끝낸 8단지(포레나 노원)를 제외하고 현재 모든 단지가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9단지 전용 79.07㎡는 2월 9억2천만원(8층)에 신고가로 거래된 뒤 현재 시세는 9억4천만∼9억6천만원에 형성돼 있다.
9단지 인근 K 공인 대표는 "금요일에 매물이 하나 나왔는데, 토요일에만 3팀이 집을 보고 갔다. 원래도 매수세가 강하고 매물은 없었는데, 안전진단 통과하면 조합원 지위 양도가 안 된다는 소식에 예비안전진단만 통과한 곳 위주로 문의가 많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양천구 신월동 신안약수아파트에도 매수세가 강해졌다.
인근 M 공인 관계자는 "보름 전 87㎡가 8억5천만원에 신고가 경신해 계약됐다는 얘기를 들었고, 지금 매물은 9억원과 9억5천만원에 나와 있는데, 예비안전진단 통과하면서 매물이 줄고 가격은 더 오르는 분위기다.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규제 방침 발표 후 예비안전진단 통과 단지에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9월 법제화 전까지 예비안전진단이나 1차 정밀안전진단 통과 단지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면서 가격 상승과 매물 부족 등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재개발은 종전과 달리 사업 초기부터 지위 양도 차단으로 대규모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비사업은 통상 10년 이상 소요되는데, 이번 조치가 되려 사업 추진 동력을 상실케 할 우려가 있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예외 적용도 불가해 결국 주택 매매 자체가 금지되는 셈인데, 이 때문에 헌법상 기본권인 거주이전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 소지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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