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만델라 은퇴 후 집무실을 가다
넬슨 만델라 재단서 노벨평화상 금메달 실물 구경…신문 펼쳐든 '마디바' 저택도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초대 민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 2002∼2010년 자선업무 등을 위해 사용하던 집무실과 집을 지난 9일(현지시간) 둘러봤다.
남아공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의 부유한 교외지역 호튼 에스테이트에 있는 비영리기구 넬슨 만델라 재단은 '마디바'(존경받는 어른이란 뜻의 만델라 별칭) 관련 전시와 교육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웃음을 띤 만델라 동상이 입구에서 맞는다.
만델라 재단의 셀로 하탕 최고경영자(CEO)는 마디바가 쓰던 집무실 공간을 먼저 보여줬다.
집무용 책상과 함께 그가 보던 책들이 책장 속에 그대로 있었다.
만델라에게 기증된 책들이라고 하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한글 책자도 눈에 띄었다.
벽면 구석에는 소떼 피규어가 있었는데 만델라 전 대통령의 꿈은 은퇴 후 고향에 가서 소떼를 키우는 것이었다고 한다.
집무실을 나오려다 말고 'GOAT'라는 제목의 큰 액자형 책자가 눈에 띄었다. 물어보니 염소라는 뜻이 아니고 '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선수)의 약자로 바로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에 관한 책자라고 한다.
젊어서부터 복싱을 익힌 만델라와 알리는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만델라의 복싱 자세 사진과 알리에게 익살스럽게 펀치를 날리는 듯한 포즈의 사진도 나중에 볼 수 있었다.
만델라는 자유의 투사였고 그 스포츠적 상징이 권투로 구현된 듯했다.
집무실 앞에는 만델라와 관련된 전시 공간이 있었다.
측면을 응시하는 만델라의 큰 인물 사진 앞에서 사진 찍기 좋았다.
만델라가 1964년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백인 정권하에서 재판을 받았을 때 당초 5년 형에서 무기징역으로 연장된 것에 관한 재판 문서도 있었다. 당시 45세인 만델라가 역사적인 리보니아 재판에서 사형판결을 각오하면서 "내가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 이상은 바로 자유"라고 사자후를 토한 최후 변론문도 볼 수 있었다.
만델라가 쓴 1994년 대통령 취임 당시 연설문 등도 있었는데 대체로 정갈한 필체였다.
하탕 CEO는 기자에게 만델라가 수감된 케이프타운 앞바다 섬 수용소인 로벤 아일랜드를 가봤느냐고 물어봤다.
지난 3월 케이프타운을 갔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섬은 폐쇄된 상태여서 "못 가봤다"고 하자 만델라가 18년 동안 갇혀 있던 로벤 아일랜드 감옥의 독방 공간을 같은 넓이로 재현한 곳을 보여줬다.
만델라와 동료 자유투사 수감자들은 로벤 아일랜드에서 저마다 벽돌 깨는 일을 했다.
만델라의 생존을 외부 언론에 알리기 위해 일부러 찍은 사진과 만델라가 법정에 출두할 때 입은 자칼 가죽 전통 의상도 전시돼 있었다. 왜 전통 복장을 했느냐고 묻자 불공정한 재판정이 양복을 입으라고 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고 한다.
나중에 관련 전시물을 보니 커피 캔 같은 것으로 만델라는 그 깡통 안에서 반죽한 빵을 구워 먹었다고도 했다.
만델라는 수감 기간 교정 당국에서 제공한 작은 쪽 달력에 매일 자신의 혈압과 누구를 만났는지 적었다.
그 달력 인쇄물을 보니 만델라가 하루는 혈압이 최고 160과 최저 90이라고 쓴 곳이 있었다. 상당한 고혈압이었다. 또 그날 그날 누구를 만났는지도 한 줄씩 적혀 있는데 만난 사람 중에는 P.W. 보타 당시 대통령도 있었다.
이렇게 그는 기나긴 감옥 생활을 견뎌낸 것이다. 만델라의 총 수감 기간은 27년으로 당시 정치범으로는 세계 최장이었다.
그러면서 철저히 자기관리를 했다. 만델라는 나중에 은퇴해서도 식단에 신경을 써 소 꼬리곰탕 같은 것을 먹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즐겨 했다고 한다.
재단 지하로 가니 만델라와 관련된 기증품, 그림 등 수장고가 있었다.
이곳의 백미는 만델라가 1993년 받은 노벨평화상 실물 수상 증서와 금메달이었다.
평생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한 투사의 피땀과 고통이 서려 묵직하게 다가왔다. 상장 왼편에는 예술작품 그림이 컬러풀하게 그려져 있다.
만델라에게 기증된 남아공 크리켓 국가대표팀의 유니폼도 있었다.
눈에 띈 것은 한국에서 기증했다는 전통 혼례 복장의 신랑·신부 상과 서울대에서 1995년 만델라에게 수여한 명예박사 증서였다.
장소를 옮겨 만델라가 만년에 기거하던 인근 집으로 갔다. 차를 타고 갔지만 1㎞ 거리밖에 안됐다.
마침 로드셰딩(순환정전)이라 정문의 전기 작동 도어 록이 열리지 않아 옆문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현재 부티크 호텔로 리모델링 중으로 오는 8월 1일 개장할 예정이다.
호텔의 정면과 군데군데 만델라가 살던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디바가 살던 공간에서 직접 자고 식사를 하면서 느껴볼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개조됐다.
마디바가 묵상하고 가꾸던 정원도 예쁘게 꾸려졌고 추운 겨울에는 물을 덥혀서 사용했다는 개인 수영장도 있다.
마디바가 이 집 정문 앞에서 신문을 보는 사진과 동상도 있었다.
안내자인 샐리 앤 운영 매니저와 하탕 CEO는 마디바가 신문을 볼 때 재밌는 습관을 전해줬다.
마디바는 활자매체인 온갖 신문을 다 탐독했는데 남이 먼저 넘겨 본 신문은 읽지 않았다고 한다.
또 신문의 요하네스버그 주식시장(JSE) 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고 한다. 그중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른 잘 나가는 회사를 체크한 후 해당 회사 측에 농촌지역 학교 건립 지원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은 마디바의 침실도 재현하고 곳곳에 그의 인생역정을 드러낸 유명 화가의 그림과 사진 등이 걸려 있었다.
식당도 마련돼 마디바가 즐기던 식단을 그의 요리사 중 한 명이 직접 제공할 예정이다
박철주 주남아공 대사와 윤영기 정치담당 참사관은 이날 이곳에서 하탕 CEO와 함께 내년 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김대중평화센터와 만델라 재단 간 협력 사업을 논의하기도 했다.
만델라의 만년 삶의 공간에서 위인의 흔적을 직접 느껴보면서 마디바가 한층 실감나게 다가왔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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