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에 의한 고문사 최소 21명"…비공개 재판 횡행

입력 2021-06-11 11:56
수정 2021-06-11 11:57
"미얀마 군부에 의한 고문사 최소 21명"…비공개 재판 횡행

군경에 체포 후 상처 가득 시신으로…고문 증언 잇따라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올해 2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뒤 시민 860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최소 21명이 군경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11일 이라와디 등에 따르면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는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반쿠데타 활동 참여자와 무고한 시민 가운데 최소 21명이 고문 흔적과 함께 시신으로 돌아왔다"고 발표했다.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소속으로 양곤 파베단 구(區) 의장인 킨 마웅 랏(58)은 지난 3월 6일 군경에 끌려간 뒤 다음날 오전 사망했다.

그의 가족은 "집에 들이닥친 군경이 발로 차는 등 마구 때린 뒤 끌고 갔다"며 "다음 날 아침 '실신 후 숨졌다'는 연락을 받고 군 병원에 달려가 보니 머리와 등에 심각한 상처가 있었고 피 묻은 천으로 덮여있었다"고 증언했다.



NLD 소속으로 직업훈련소 책임자인 조 먓 린(47) 역시 군경에 끌려간 다음 날 사망했다.

시신은 끔찍한 상태로 돌아왔다. 얼굴 피부와 입이 손상됐고, 온몸에는 멍 자국이, 복부에는 큰 상처와 함께 장기가 노출돼 있었다고 사망자의 아내는 말했다.

군 당국은 "조 먓 린이 도망치려다 9m 높이 담장에서 쇠 파이프 위로 떨어져서 그렇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가족은 "담장 높이가 2.5m도 안 된다"며 해명을 믿지 않았다.

이라와디는 반 쿠데타 시위에 앞장서다 체포돼 고문 흔적과 함께 시신으로 돌아온 이들의 사연을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장기가 사라진 채 돌아온 시신도 한둘이 아니다.



반 쿠데타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단순히 시위대 근처에 있던 시민도 끌려가 숨졌다.

지난 3월 19일 마궤 파코쿠 마을에서 시위대를 향한 총격 소리가 나자 세 아이의 엄마인 말라 윈은 집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인지 쳐다봤다.

하지만, 군인들의 눈에 띄었고, 말라 윈이 무릎을 꿇고 체포하지 말라고 빌었지만, 허벅지 등을 때리며 끌고 갔다고 목격자가 전했다.

다음 날 아침 말라 윈의 가족은 "시신을 수습해가라"는 군 당국의 연락을 받았다.

시신의 얼굴에 멍이 들었기에 가족들은 고문을 받아 숨진 것으로 확신했다.

아웅 윈 토라는 시민도 찻집에 있다가 아무 이유 없이 군경에 끌려간 뒤 시신으로 돌아왔다고 AAPP는 밝혔다.



교도소내 비공개 재판이 횡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미얀마나우는 지난 3월 9일 반 쿠데타 시위를 하다 체포된 청년 32명이 8일 메익교도소에 설치된 임시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선동죄와 불법 시위 혐의로 30명은 징역 2년을, 19세 청년 두 명은 3건의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들과 함께 체포됐다가 풀려난 동료는 신문 당시 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체포된 뒤 메익공항 근처 공군기지로 끌려갔다. 우리는 무릎을 꿇은 채 허리벨트, 몽둥이, 쇠 파이프, 쇠사슬 등으로 구타당했다"며 "수치 고문 문신을 한 사람은 더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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