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빈의 플랫폼S] 탄소세 '성큼'…겨울 실내서 옷 껴입을 준비돼있나요
독일, 자동차유·난방유 탄소세 이어 탄소 감축 목표 상향
독일 움직임에 발등에 불 EU…기업은 물론 개인 부담 놓고 고심
비용 부담 주체와 비중이 관건…정치권의 갈등 조정 능력 필요
[※ 편집자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입니다. 그린테크와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이 과정에서의 갈등 조정 능력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두 번째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탄소 중립 추진 과정에서 비용 발생은 불가피하다. 산업 체질을 바꾸면서 새 일자리 및 고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기대되지만, 비용이 먼저 따른다. 기업만 지불하지 않는다. 개개인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탄소 중립 드라이브의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최근 이 지점에서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EU의 중심축인 독일이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서 치고 나가자 다른 회원국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독일이 지난 1월부터 휘발유와 디젤유, 난방유, 가스에 대해 사실상 탄소세인 t당 25유로의 탄소배출 비용을 부과했는데, 최근 탄소 배출 감축 목표치까지 올려버린 탓이다.
◇ 독일의 탄소 저감책 강화에 EU, 역내 확대 논의
독일 연방 내각회의는 지난달 12일 탄소 중립 달성 시한을 기존 2050년에서 2045년으로 5년 당겼다. 이를 위해 2030년과 2040년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각각 65%, 88%로 줄이겠다는 목표치도 새로 설정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29일 기후보호법(Klimaschutzgesetz)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일부 위헌이라고 결정한 데 따른 조치다.
연방헌재는 2030년 이후로 미뤄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시기를 구체적으로 앞당기라고 명령했다. 기존 법에 미래 세대를 내다 본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상 여권이 연방헌재에 등 떠밀려 강화된 목표치를 내놓은 셈이다. 더구나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원내 제6당인 녹색당이 지지율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오면서, 연정 다수파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친환경 행보에 잰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런 독일의 정책을 역내 전체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EU 집행위는 2019년 말 대부분의 EU 회원국이 합의한 대로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기 위해 저탄소 조치를 강화하려고 노력해왔다.
EU 집행위는 이달 말 열리는 EU 정상회의에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계획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일간 디차이트는 지난달 25일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기후변화 대응 목표를 더 엄격하게 이행하는 방안을 놓고 진전이 없었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회의에서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회원국들이 EU 집행위의 방안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탄소 저감 위해 개인부담 필요한데…'노란 조끼' 시위에 놀란 가슴
EU 집행위가 방안을 내놓더라도 정상회의에서 순조롭게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유권자에게 탄소세 등의 부담을 지우는 데에는 세심한 계획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U 지도자들은 2018년 프랑스 전역을 뒤덮은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호되게 당한 것을 이미 지켜본 터다.
노란 조끼 시위는 환경 오염 방지를 명분으로 탄소세 성격의 유류세 인상 후 젊은 층들의 반발 속에서 일어났다.
프랑스 정부가 부유세(ISF)를 대폭 축소 개편하고 법인세 인하를 단행한 반면, 서민에게 부담이 큰 유류세를 인상하자 민심이 폭발했다.
지난달 31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만약 브뤼셀(EU 집행위)이 계획한 것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경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지지를 잃을 것"이라며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석탄 화력발전에 상당히 의존해온 동유럽 국가들도 서유럽 국가들이 주로 드라이브를 건 저탄소 정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독일 내에서도 새 기후보호법은 논란거리다. 보수 성향의 일간 디벨트는 "수출국으로서 독일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금속노조인 IG메탈 측도 새 조치가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어려움을 겪을 기업들을 정부가 조기에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지난 1월부터 난방유와 가스가 탄소배출 거래 대상에 포함되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공동으로 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면서 양측 간 갈등 양상도 빚어지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도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담 비율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 누가, 얼마나 돈을 낼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도 탄소 중립을 위한 방안이 다각도로 모색되는 단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 직속으로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다음날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극복 노력에 선제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탄소 중립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활발하지 않다. 탄소 배출 목표치 조정 등 기후변화 대응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재계에선 '속도조절론'이 나온다. 아직 구체적인 부담 방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개개인의 저항도 현실화하지 않았다. 여전히 전기료는 낮은 수준이고, 탄소세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회에서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최근 화석연료 사용 시 세금을 부과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을 탄소세 성격으로 발의했지만, 아직 관련 논의가 불붙지 않았다.
앞으로 저탄소화를 위해 선언을 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과 시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실행해야 할 시기가 올 수밖에 없다. 그때 개인의 부담 문제도 현실화할 것이다. 노란 조끼 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탄소 중립을 위한 개인 부담 문제는 정치적 여건, 탄소세 이외의 과세 문제 등과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접근과 갈등 조정 능력이 필요한 문제다. 탄소 중립을 위해, 지속가능한 사회, 미래 세대를 위해 개개인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누가, 얼마나 부담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거주지를 한국에서 독일로 옮긴 중산층 이하 계층은 대체로 겨울철 실내에서 한국에서보다 옷을 더 껴입는다. 에너지 비용 부담이 큰 탓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꾸준히 늘려온 독일에서 전기요금은 한국의 3배 이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국가별 가정용 전기요금'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kWh당 8.02펜스(약 126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6개국 중 가장 저렴한 수준이었다. 독일은 OECD 국가 중 가장 비싼 kWh당 26.17펜스(409원)였다. 전기요금도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 한국의 전기 사용 및 난방 습관을 유지했다가는 '폭탄' 청구서를 받아들 수밖에 없다. 독일은 녹색당 집권 가능성까지 크게 제기될 정도로 기후변화 대응에 속도를 내는 사회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 등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가 계속됐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탄소 중립에는 비용이 작용한다. 그리고 그 비용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비용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저항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매를 일찍 맞는 게 효용이 클 수 있다.
독일 플렌스부르크유럽대의 지속가능 에너지 전환 분야 교수인 파오-유 오에이는 지난달 12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석탄 산업지역(루르·자를란트)에 산업 유지의 헛된 희망을 주지 않았다면 전환 비용이 더 적고 전환 속도도 빨랐을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부인해왔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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