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시행 5년…벌칙 규정 없어 한계
벌칙 규정 신설 주장에 日정부 '표현의 자유' 이유로 소극적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를 막기 위한 법률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그러나 재일(在日) 한국·조선인과 중국인 등을 대상으로 한 헤이트 스피치는 인터넷 공간 등에서 여전히 넘쳐나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벌칙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선 2010년대 들어 우익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외국 국적자 등을 향한 헤이트 스피치가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이에 일본 국회에서 헤이트 스피치 대책으로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이 제정돼 2016년 6월 3일부터 시행됐다.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으로 불리는 이 법률에는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 출신자와 그 자녀에 대한 차별적 언동은 '용인되지 않는다'고 명기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헤이트 스피치를 금지하고 벌칙을 부과하는 규정이 없어 선언적 수준의 법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도쿄도(東京都)와 오사카(大阪)시 등 지자체도 헤이트 스피치를 막기 위한 조례를 제정했지만 대부분 벌칙 규정이 없다.
그나마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가 작년 7월부터 혐한(嫌韓) 시위 등을 반복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50만엔(약 51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를 처벌하는 내용이 담긴 첫 일본 지자체 조례다.
도쿄신문은 2일 자 사설에서 시행 5년을 맞은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에 대해 "헤이트 스피치가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인식이 확산해 일정한 억제 효과는 인정되나, 인터넷 공간 등에서는 여전히 차별적 언설(言說)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난 3월 18일 가와사키시에 있는 외국인과 일본인의 교류를 촉진하는 시설에는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며 '죽어라'는 등의 문구를 담은 협박성 문서가 배달되기도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화장품 기업인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吉田嘉明) 회장은 작년 11일부터 한국·조선인 차별을 조장한다는 글을 버젓이 회사 홈페이지에 여러 차례 올렸고, 지자체 등이 거래 중단 움직임을 보이자 슬그머니 해당 글을 삭제했다.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시행 이후 가두 헤이트 스피치 시위와 집회는 줄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 공간에선 특정 인종과 민족을 욕하고 업신여기는 표현이 넘쳐나고 있다고 도쿄신문은 분석했다.
신문은 "해외에서도 폭력을 동반하는 증오 범죄와 헤이트 스피치 문제가 심각해져 법률로 규제하는 나라도 있다"며 "일본의 전문가 중에는 규제를 더 강화하는 내용의 법 정비를 요구하는 의견이 있다"고 소개했다.
벌칙 규정을 신설해 헤이트 스피치를 강하게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소극적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제정 때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 금지 규정과 벌칙 규정을 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토 장관은 현행 법률의 취지에 근거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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