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 공식 거부 속 중국산 코로나 백신 '국공합작'

입력 2021-05-31 15:09
대만 정부 공식 거부 속 중국산 코로나 백신 '국공합작'

차이잉원 정부 꺼리지만 국민당이 앞장서 중 지원 수용 압박

대만, 여론악화에 민간 백신 조달 허용해 中백신 도입 가능성 열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세계적인 방역 모범 지역이던 대만에 뒤늦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차 파도'가 덮친 가운데 대만에서 중국이 지원하겠다는 코로나19 백신을 받을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런 가운데 전통적으로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이 중국 백신 수용에 앞장서면서 새로운 '국공 합작'(國共合作·국민당과 공산당의 연합)이 연출되고 있다.

31일 중앙통신사와 중화TV 등 대만 매체들에 따르면 국민당 조직인 쑨원(孫文)학교 장야중(張亞中) 교장은 지난 29일 중국의 베이징양안동방문화센터(北京兩岸東方文化中心)로부터 코로나19 백신 1천만회분을 기증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장 교장은 이 중 500만회분은 중국 시노팜(중국의약그룹) 백신, 나머지 500만회분은 중국 푸싱의약그룹이 공급하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이라고 설명하면서 기증 백신 전량을 대만 위생부에 위탁해 시민들에게 보급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최근 대만에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겠다면서 '백신 평화 공세'를 펴고 나온 가운데 비록 당국 차원은 아니지만 대규모 백신 제공 합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측 관변 단체와 국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친중 성향 정치인이 '국공 합작'을 통해 중국 정부의 백신 지원 수용을 꺼리는 대만 정부를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장야중의 발표는 지방정부나 민간 조직도 직접 코로나19 백신을 조달할 수 있도록 입장을 바꾼 직후에 나왔다.

코로나19 확산이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중앙정부가 일괄해 코로나19 백신을 조달하게 한 기존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천스중(陳時中) 위생부장은 지난 28일 지방정부와 민간도 직접 백신을 구매할 수 있게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중국의 백신 제공 제안을 '통일전선을 통한 분열 획책' 차원이라고 평가절하했던 차이잉원(蔡英文) 정부로서는 다소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이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대만의 인구 대비 백신 접종률은 2%가량에 그친다. 중국 측의 백신 지원 제안을 거절하면 정치적 목적으로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만에서는 중국 백신의 안전성을 불신하는 풍조가 강해 시노팜 백신 지원을 수용한다면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낳을 수 있다.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시노팜 백신 지원을 받아 보급하려면 먼저 보건 당국의 사용 승인이 나야 한다.



대만 정부가 구매를 강력히 원하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과 수용 의사가 낮은 중국산 백신을 절반씩 섞어 주겠다는 중국 측의 제안은 대만 정부의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어떠한 (코로나19 백신) 기증도 여전히 대만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베이징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 풍조를 고려할 때 많은 (대만)섬 주민들은 그것(중국이 주는 백신)을 꺼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거세진 반중 정서 속에서 2020년 한꺼번에 치러진 대선·총선에서 대패해 궁지에 몰렸던 국민당은 '정치 논리보다 방역이 우선'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중국 백신을 수용하라고 차이잉원 정부를 강하게 장외 압박 중이다.

국민당은 이를 통해 차이잉원 정부가 백신 확보에 실패했다는 메시지까지 부각하려는 모습이다.

장치천(江啓臣) 국민당 주석은 전날 당 회의에서 "백신은 코로나19 확산을 완화할 가장 효과적 방법이지만 지금껏 중앙정부는 충분하게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차이잉원 정부가 민중의 긴박한 목소리를 듣고 (중국) 민간단체가 제안한 선의의 기증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만의 코로나19 상황이 날로 심각해지면서 차이잉원 정부도 중국 백신 수용 문제에서 전보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장둔한(張惇涵) 총통부 대변인은 전날 "차이잉원 총통은 (방역) 지휘센터에 지시해 신속히 신청 단체 측과 연락해 관련 상황을 파악하고 관련 물자의 근원을 확인해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대만은 엄격한 국경 관리 등 효과적 방역 정책을 펴 지난 1년여에 걸친 총 누적 확진자가 이웃 나라 일본의 하루 신규 확진자보다 적을 정도로 오랫동안 지역사회 감염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처음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면서 지난 16일 이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연일 세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백신 도입 속도는 크게 늦은 편이어서 집권 2기 이후에도 줄곧 높은 인기를 누리던 차이잉원 총통 지지율도 50% 밑으로 뚝 떨어졌다.

전날 대만에서는 355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견돼 누적 확진자는 8천160명으로 늘어났다.

또 이날 10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한 누적 사망자도 109명을 기록, 처음으로 100명을 넘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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