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빈의 플랫폼S] 중국·비트코인 파고드는 신무기 '탄소중립'
머스크의 비트코인 저격 속내는…전력 절감 가능할까
애플, 탄소중립 가치사슬을 미래 경쟁력으로
미, 청정에너지 계획 이어 탄소국경세 '만지작'
중국 등 신흥국, 통상 위협 가능성에 긴장
[※ 편집자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입니다. 그린테크와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과정의 갈등 조정 능력 등에 대한 글로벌, 국내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플랫폼S 연재의 첫 이야기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탄소 리스크'의 잠재적 폭발력이 발화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도 파장이 커지고 있다.
기세가 꺾일 줄 모르던 비트코인은 '탄소 리스크' 앞에 휘청인다. 미국은 지난 4년간 창고 안에 넣어두었던 기후변화 대응을 올해 들어 중국을 겨냥한 신무기로 꺼내 들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대규모 친환경 인프라 구축 계획을 내놓은 데 이어 탄소 국경세 도입에 관해 운을 뗐다. 미래형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 리스크를 헤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탄소 중립 가치 사슬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에 이미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미래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전략이다. 올해 들어 비즈니스 분야에서 팬데믹처럼 번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도 이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최근 몇 개월간 두드러졌다.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싼 움직임은 변두리 뉴스를 넘어섰다. 정치·경제·사회의 핵심부로 성큼 들어오고 있다.
단기간에 폭발력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 저변에는 기후변화 대응 문제가 NGO(비정부기구)의 역할을 넘어 시민사회의 과제로 뿌리내려왔다. 어린이들은 넷플릭스에서 바다 생태계의 종말을 경고한 '씨스피라시'(seaspiracy)와 같은 환경 다큐멘터리를 쉽게 접한다.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취지에 공감하는, '제2의 툰베리'를 꿈꾸는 미래 세대는 이미 군단급을 훌쩍 넘어섰다. 현 시스템으로는 그들의 미래가 위협받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
상품 소비, 문화 현상에서도 탄소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점점 상수가 되어가고 있다. 전기차 구매는 아직은 불편함을 사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엣지' 효과를 부수적으로 얻는다. 2009년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한 뒤 한동안 차별화를 추구하기 위해 구매하는 아이템이 되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탄소 중립에는 친환경을 넘어 미래 이미지도 따라붙는다. 이미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공유경제, 스마트 그리드는 내연기관차가 아니라 전기차와 맥락이 통한다.
◇ '무적 비트코인'에 타격 준 '탄소 리스크'
인류 생존의 필수 관리 조건인 '탄소 리스크'가 대중 속으로 조금 더 각인되는 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컸다. 지난 12일 테슬라 자동차 결제에 비트코인의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그의 '변심'이나 '변덕', 또는 '술책' 덕분이다. 명분은 비트코인이 '전력 먹는 하마'라는 것이었다.
머스크가 지난 2월 테슬라가 15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데다, 노골적으로 가상화폐를 지지해온 터에 나온 폭탄 발언이었다. 상승세를 멈출지 모르던 비트코인 가격은 직격탄을 맞았다.
비트코인의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전력소비 문제는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었는데도, 머스크가 뜬금없이 입장을 바꾼 것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다. 이후 머스크가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도지코인을 노골적으로 띄우는 것을 놓고 가상화폐 시장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 '비트코인 죽이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있다. 종잡을 수 없고 독점적 성향이 강한 머스크의 그간 행보를 통해 시장 일각에서 나온 추측이다. 채굴에 한계가 있는 비트코인 대신 무한정 발행이 가능하고 자신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수 있는 후발 가상화폐를 밀고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머스크는 속내를 아직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외부로 나타난 사실은 머스크에게 탄소 배출 문제는 그의 사업에 주요 요소로 작용해왔다는 점이다.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을 선도해온 것뿐만 아니라 탄소배출권 거래로 재미를 봐왔다. 지난해 15년간의 적자행진에 마침표를 찍은 데에는 탄소배출권 거래 탓이 컸다. 올 2분기 흑자 여부도 탄소배출권 거래 실적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지역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이 지난 23일 에너지 사용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표준화하는 협의 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하락세인 비트코인에 호재가 됐다. 머스크도 동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채굴은 세계 각지에 분산돼 이뤄지는 데 65%가 중국에서 이뤄진다. 특히 중국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채굴 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관련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가상화폐 채굴에 연루된 개인과 기업은 '신용 불량 명단'(블랙리스트)에까지 올라가게 됐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0일 '비트코인의 증가하는 에너지 문제점, 그것은 더러운 통화다'라는 기사에서 "더 친환경적인 비트코인 버전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비트코인의 코드는 덜 에너지 집약적인 합의 메커니즘으로 전환될 수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모든 채굴장이 작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견으로 점철된 비트코인 커뮤니티 전체가 그러한 계획을 지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업계 내부자들은 말한다"라고 했다.
더구나 기성세대보다 기후변화 문제에 민감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에게 비트코인의 탄소 배출 문제가 인식된 깊이는 아직 알 수 없다.
◇ 애플의 탄소중립 행보가 그리는 미래는
맥북과 아이폰, 아이패드, 앱스토어 등을 내놓으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애플은 친환경 분야에서도 파격적으로 나왔다.
애플은 이미 지난해 7월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0)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이폰 등 자사 제품뿐만 아니라 부품 공급망까지 포함해서다. 애플은 지난 4월 20일 자체 개발한 M1 칩을 탑재한 24형 아이맥과 5세대 아이패드 프로 등 신제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방침을 재확인했다. 팀 쿡 CEO는 "매년 탄소 배출량을 100만t 감축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애플은 신제품 발표 며칠 전 2억 달러 규모의 탄소 제거 이니셔티브인 '복원 기금'(Restore Fund)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기금은 생물 다양성을 향상하기 위한 자연 휴양림 조성 등에 사용된다.
애플이 2030년 탄소 중립 전략을 재확인한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신제품 발표에 묻혀 주목을 덜 받았지만, 장기적으로 상당한 파괴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략의 적용 대상이 애플 자체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해 탄소 중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SK하이닉스를 포함한 71개 글로벌 협력업체들이 "100% 청정에너지로 애플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라고 밝혔다. 애플과 관련된 비즈니스 가치 사슬은 청정에너지가 뒷받침된다는 이야기다. 이 생태계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지는 상상해볼 수 있다. 애플은 차별화된 이미지, '엣지'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능한 기업이다.
애플뿐만이 아니다. 페이스북도 2030년까지 관련된 모든 가치 사슬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구글도 2030년까지 클라우드 사업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상황이고, 아마존은 2025년까지 기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청정에너지로 공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페이스북은 풍력 발전단지, 아마존은 태양광 발전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이들 기업을 포함한 미국의 300개 이상 기업들은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치를 기존의 2배로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미 기후변화 대응 속도를 높이기로 작정한 바이든 행정부와 보조를 맞춘 모양새였다. 눈앞에 다가온 '탄소 리스크'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눈치 빠른 행보로 비쳤다. 이에 맞장구를 치듯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미국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50∼52% 감축하겠다는 상향된 목표를 제시했다.
◇ 기후변화 정책 복원 넘어 반중 무기화 삼는 바이든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변화 행보는 '광폭'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지난 1월 취임 직후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 행정명령에 이어 4월에는 40개국 정상을 초청해 화상으로 기후정상회의를 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지못해 참석한 중국과 러시아 정상 앞에서 미국이 다시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의 고삐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전 세계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중국으로서는 불편한 상황이다. 중국은 2060년에서야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무시했던 트럼프 행정부 때는 볼 수 없었던 신무기를 마주하게 된 셈이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4조 달러대의 매머드급 인프라-복지 패키지를 내놓으면서 청정에너지 등 친환경 인프라 구축을 주요 사업 중 하나로 내세웠다. 저탄소 경제 체제를 구축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미래 글로벌 경제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산업 전환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시사했다. 지난 19일 포드의 전기차 공장을 찾아 중국이 전기차 보급 레이스에서 앞서고 있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이 이기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탄소 국경세는 통상 전쟁에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의 히든카드로 부상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존 케리 기후특사는 지난 18일 유럽 녹색 혁명의 심장부인 독일 베를린에서 탄소 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추진될 경우 탄소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는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앞서 유럽연합(EU)은 이미 '그린 딜' 계획에 따라 탄소 국경세를 2023년에 도입하겠다고 예고했다.
국제환경단체들로부터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듣는 한국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6번째로 많았다. GDP에서 온실가스 대량 배출 산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철강과 석유화학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수출 산업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발맞춰 2050년 탄소 중립을 이루기로 선언했다.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이는 목표다. 그런데 최근 탄소 중립을 둘러싼 국제적인 흐름은 우리가 잠시도 브레이크를 밟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급물살을 타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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