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시장은 머스크의 노예?…미워하면서 달라붙는다

입력 2021-05-27 05:30
수정 2021-05-27 08:56
코인시장은 머스크의 노예?…미워하면서 달라붙는다

"머스크 추종자들, 헤어날 수 없는 애증의 중독"

"시장 혼탁·불투명에 기인…제도의 틀로 규율 세워야"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코인교의 교주'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의 한마디에 코인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워낙 변덕스럽고 언행이 경박해 글로벌 첨단기업 리더로서의 품격이라곤 찾기 어렵지만 코인 투자 광풍 속에서 코린이들은 머스크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만 바라보고 있다.

머스크는 미래를 앞당기는 선지자와 혹세무민의 사기꾼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코인 시장을 주무른다.

투자자들은 한편으로 럭비공 같은 그의 언행을 미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노예처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보인다.

◇ 미래를 여는 선지자인가 사기꾼인가

전기차 테슬라와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일론 머스크는 미래를 앞당기는 선지자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본업에서 벗어나 코인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머스크의 행태는 그가 혁신가라는 점을 감안하더러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테슬라 전기차를 팔 때 비트코인 결제를 받겠다고 선언해 시장을 폭발시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철회하고, 보유 비트코인을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일부 팔아 치워 패닉을 불렀다.

'도지파더'를 자처하며 '듣보잡' 코인이었던 도지코인을 가장 뜨거운 종목으로 키웠다. 지난 8일엔 올들어 140배 이상까지 폭등해 시가총액이 900억달러(100조원)를 넘기도 했다.

당시 글로벌 제약업체인 모더나와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인 GM의 시가총액이 700억달러 안팎이었음을 감안하면 기적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손에 닿는 것을 모두 금으로 만든 신화속의 왕인 미다스에 못지않은 마술이다.

투기의 역사에도 한 개인이 이처럼 상품 가격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전례는 없다.

머스크가 주식시장과 같은 제도권 시장에서 이처럼 좌충우돌했다면 시세조종으로 벌써 감옥을 몇 차례 드나들었을 것이다. 이런 행태는 돈 때문일까, 아니면 정서적·심리적 요인 때문일까.

심리학자인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머스크가 심한 관종(關種:관심병 환자)인 것 같다"고 했다. 관심병은 타인의 관심을 누리고 싶어하는 욕구가 병적인 수준에 이른 상태다.

곽 교수는 "자신이 코인시장을 주무르는 현재 상황을 굉장히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뭔가 계속 관심받을 일을 해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심리적 경향이 매우 두드러진 사례"라고 진단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머스크가 코인시장에서 돈을 벌려고 한다기보다는 이슈를 끌고 가면서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은 개성 강한 혁신가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힌다"고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대해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잖아'하는 기분으로 기존 규제시스템을 조롱하고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사이비 교주 같은 행태라고 지적한다. 사이비 종교는 반사회적·비윤리적이고, 기성종교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하며, 요행수를 바라고 운명에 기대게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제도화한 시장 질서나 '어른'들의 관점에서는 코인시장에서 머스크의 행태를 이와 유사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 '애증의 중독'…"룰 정비해 불법 피해는 막아야"

머스크의 변덕으로 시장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자 많은 투자자가 분노했다. 그들은 '악당' '거짓말쟁이'라는 욕설을 담은 해시태그를 트위터에 올리고 테슬라 불매운동에 나서거나, 머스크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가상화폐까지 발행했다.

머스크를 시세조종자라고 깎아내린 '스톱일론'(STOPELON)이라는 단체는 "머스크는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장난질을 하고 있다"며 "그는 나르시시즘적인 억만장자이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머스크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종한다. 그의 럭비공 같은 행태를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일확천금을 부를 '복음'을 기대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혼탁한 코인시장에서 믿고 의지할 '권위'가 없기 때문이라고 봤다.

우 교수는 "코인은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기에 누군가 권위자가 미래의 좌표를 찍어줘야 하는데 딴 세상 사람처럼 보이는 혁신가 머스크가 그런 역할을 자처하면서 투자자들이 싫든 좋든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측면이 크다"고 했다.

홍기훈 교수는 "한 방을 노리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머스크의 행태가 싫지만은 않을 것"이라면서 "머스크의 언행으로 돈을 벌었느냐 잃었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갈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곽금주 교수는 코인 투자자의 심리 기저를 파고들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코인시장에 뛰어든 많은 젊은이가 머스크를 미워할 수 없는'애증의 중독'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이를 '대립정서' 또는 '대립감정'이라고 했다. 머스크의 말 때문에 돈을 잃을 때는 그를 미워하지만 진짜 증오해 관계를 단절하면 돈을 벌 기회 자체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계속 그의 자장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코인시장의 '머스크 리스크'를 줄여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틀과 룰을 만들어 혼탁과 불투명성, 불법, 탈법을 걷어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다.

우 교수는 "코인 거래에서 돈을 잃고 버는 것은 전적으로 투자자 책임이지만 최소한 자산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룰을 정비해 사기 등의 불법으로 피해를 보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kim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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