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어 갑자기 '뚝'…이탈리아 케이블카 추락 참사 재구성
와이어 파열 직후 비상 브레이크도 미작동
미끄러져 내려오다 철탑과 충돌한 뒤 추락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당국이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케이블카 추락 사고 원인 규명에 착수한 가운데 당시의 긴급했던 상황이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관계 당국의 발표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사고 경위를 재구성해보면 전날 정오께 마조레 호수를 낀 피에몬테주 스트레사 시내에서 케이블카 한 대가 1천491m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 케이블카에는 관광객 15명이 탑승한 상태였다. 탑승 정원(35∼40명)의 절반을 약간 밑도는 수다.
케이블카는 출발 후에는 한동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큰 문제 없이 작동했다. 그러다 정상을 약 100여m 남겨놓고 갑자기 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주 케이블이 끊어지며 케이블카가 뒤로 수 미터 후진했고 이어 철탑에 부딪힌 뒤 보조케이블에서도 이탈해 아래로 추락했다. 케이블카는 이후 2∼3바퀴를 구른 뒤 멈췄다.
이 충격으로 일부 탑승객은 케이블카 밖으로 튕겨 나갔다. 시신 일부는 케이블카 인근 산비탈에서 수습됐다.
와이어가 끊어진 직후 케이블카의 후진을 막는 비상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장에 투입된 산악구조대 측은 "와이어 파열과 비상 브레이크 미작동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비상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재 수사당국은 케이블카 운행 장소 출입을 통제하고서 사고 원인 조사에 들어갔다. 기기 결함, 유지·보수 부실 등에 따른 과실치사 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외부 공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사고 케이블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정부 규제로 1년 이상 멈춰있다가 최근 운행을 재개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최초 운행은 1970년 8월이며, 2014∼2016년 2년에 걸쳐 대대적인 유지·보수 작업이 있었다. 와이어에 대한 정밀 점검은 작년 11월이 마지막인 것으로 파악됐다.
케이블카 유지·보수 업체는 케이블카 운영 재개 전 전반적인 점검을 시행했으며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고로 2세 영아와 6세·9세 어린이를 포함해 5가족 총 14명이 숨졌고, 유일하게 생존한 5세 남자 어린이는 다발성 골절상을 입어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자 중에는 이스라엘계 일가족 5명과 이란계 20대 방문객 1명도 포함돼 있다.
살아남은 어린이는 이스라엘계 가족의 일원이다. 이 아이는 이번 사고로 2세 남동생과 부모, 조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
유럽에서 케이블카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AFP 통신에 따르면 2005년 9월 오스트리아 티롤의 한 스키 리조트 인근 상공을 지나던 헬기에서 무게 800㎏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케이블카를 덮쳤고 이로 인해 독일인 관광객 9명이 숨졌다.
또 1998년 2월에는 저공 비행하던 미군 항공기가 이탈리아 돌로미티 스키 리조트의 케이블을 절단하면서 2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해당 리조트에서는 1976년에도 강철 재질의 보조 와이어 파열로 케이블카가 추락해 42명이 사망하는 참변이 발생한 바 있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이번 사고는 모란디 대교 붕괴 이후 3년 만에 되풀이된 공공 안전 참사로 기록됐다.
앞서 2018년 8월 북서부 리구리아주 제노바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구간 모란디 대교의 상판과 교각이 갑자기 무너져 43명이 숨졌다.
당시 사고는 유지·보수 및 관리 부실이 원인인 것으로 잠정 결론났고, 사고 책임이 있는 업체 관계자는 전원 재판에 넘겨졌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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