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서 백린탄 사용 정황…심한 화상 환자 속출"
텔레그래프, 피해자 증언 담긴 영상물 입수해 보도
'전쟁범죄' 가능성 대두…공격 주체는 확인 안돼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반년 넘게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계속되는 에티오피아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백린탄을 사용한 정황이 드러나 전쟁 범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피해자의 모습이 찍힌 영상과 목격자 증언 등을 토대로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군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백린탄과 같은 화학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백린탄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 중에는 티그레이 중부 마을 출신의 키사넷이라는 13세 소녀도 포함됐다.
4월20일 공격으로 심한 화상을 입은 키사넷은 전화 통화에서 "중화기가 집을 덮쳤고 지붕에서부터 불이 떨어져 바로 몸으로 옮겨붙었다. 화약 냄새도 났다"라면서 울먹였다.
특히 텔레그래프가 입수한 영상에는 팔, 다리, 얼굴, 손 등에 심한 화상을 입은 키사넷이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이 나온다.
화상의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상처 부위에 살짝 손을 대기만 해도 끔찍한 비명이 새 나올 정도다. 진통 효과가 강한 모르핀 주사도 소용없다고 한다.
백린은 공기와 만나면 바로 발화해 섭씨 2천700도 이상 타오르는 화학 물질로, 국제법상 인간을 대상으로 한 사용이 금지돼 있다.
또 다른 피해자인 18세 남성 예만도 얼굴과 손, 팔, 다리에 끔찍한 화상을 입었다.
그는 영상에서 "4월9일이었다. 집에 혼자 앉아있는데 갑자기 집이 공격을 받았다"라며 "질식할 것 같은 냄새가 났고 집에 불이 났다. 몸에도 불이 붙었다"라고 말했다.
영상을 본 화학무기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의 상처가 백린 공격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상처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영국 합동 화생방 및 핵무기 연대 전 사령관이었던 하미시 데 브레튼-고든은 "이 끔찍한 상처들은 북동, 북서 시리아에서 목격했던 사상자들의 상처와 너무 유사하다"라고 말했다.
'화학 전사'(Chemical Warrior)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백린탄은 시리아에서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몰아내기 위해 사용됐다"라면서도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책임 규명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화학·생물학 무기 전문가 댄 카스제타도 "폭발성이 강한 탄약도 불을 일으키지만 이것은 백린과 같은 소이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공격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공격을 받았을 당시 마을 주변에서는 교전이 이뤄지지도 않던 상황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양측 정부 역시 확인을 요구하는 질문에 응하지 않았다.
내전이 벌어진 지역들은 특히 언론인이나 인권 운동가들의 접근이 차단돼 이곳에서 벌어진 인종 청소, 집단 성폭행 등 엄청난 전쟁 범죄의 진상을 파헤치기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북부 티그라이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이어졌고, 국경을 접한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정부군을 도와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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