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합의 계승 밝힌 美, 최대 유연성으로 북미협상 재개의지
싱가포르합의 존중 발언 속출, 외교로 해결의지 반영…트럼프땐 '최대압박'
'원칙 대신 각론 협상하자' 실용적 접근법…북, 적대정책 선철회 요구
미 "제재는 유지" 입장속 최대유연성 언급…대화 재개까지 기싸움 예상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에서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존중한다는 메시지가 잇따른다.
미국은 대북 제재 유지 방침 속에서도 '최대 유연성'(Maximum Flexibility)을 언급하며 북한의 협상 테이블 복귀를 희망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 선철회 요구를 유지해 기싸움 속 험로가 예상된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지난 18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의 노력은 이전 정부에서 마련된 싱가포르 및 다른 합의 위에 구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고위당국자도 19일 언론을 상대로 한 한미정상회담 사전 브리핑에서 새 대북정책에 대해 "싱가포르 합의뿐만 아니라 이전 행정부의 다른 합의 위에 구축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6월 이뤄진 싱가포르 합의는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 참전 유해 송환 등 4개 항을 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 폐기를 첫 과제로 삼을 정도로 외교정책의 '탈 트럼프'를 공언한 바이든 대통령이 싱가포르 선언을 계승할지는 외교가의 큰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한국 정부가 그간 싱가포르 선언을 바이든 행정부의 북미관계 출발점으로 삼자고 제안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기류는 외교와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로 기조를 잡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유화적 손길을 내민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북미 정상 간 합의 정신을 존중하고 이어받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합의 자체가 구체적인 비핵화 해법보다는 새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등 원칙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이 주여서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굳이 이를 배척할 이유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싱가포르 선언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 서명한 첫 합의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 선언에 담긴 내용은 과거 남북 회담이나 6자 회담 등을 통해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과거 행정부의 합의를 존중하는 전통이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 역시 있다.
캠벨 조정관이 새 대북 정책에서 싱가포르 합의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마련된 '다른 합의'까지 계승의 대상으로 언급한 것은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외교가는 싱가포르 합의 계승이 북한과의 조속한 비핵화 협상 재개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대화가 재개될 때 선언적 내용을 놓고 또다시 협상하는 데 시간을 소모하지 말고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제재 완화를 골자로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 및 평화 선언 등 실질적 내용을 다루는 각론 협상에 곧바로 들어가자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새 대북정책에서 강조한 '실용적 접근' 인식이 드러난 대목일 수도 있다.
문제는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응할지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말 새 대북정책 검토 완료를 선언한 가운데 이를 설명하고 전달하기 위해 대북 접촉을 시도했지만 가부간 답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외신 보도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 3일 수일, 수개월 간 북한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겠다며 북한의 호응을 주문하고 공을 북한에 넘긴 상황이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내세워 미국이 먼저 성의 있는 조처를 내놔야 한다고 맞서는 형국이다.
이에 미국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유화책을 내놓진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캠벨 조정관은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위한 제재 완화 여부와 관련해 "대북 유엔 제재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위 당국자도 종전선언 문제에 대해 "대화를 고무하려는 희망에서 종전선언과 같은 구체적 이슈에 대해 예견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새 대북정책에 대해 유연해지도록 설계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최대 유연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이 북한을 향한 전방위 압력을 통해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전략이었다면, 최대 유연성은 북한의 대응에 탄력적이고 융통성 있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실용적 접근의 사례로 볼 수 있다.
jbry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