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 언어' 풀어 보니, 병이 왜 생기는지도 알겠네
대식세포의 유전자 활성 '신호 코돈' 6개 첫 해독
셰그렌 증후군 '신호 결함' 확인…저널 '이뮤니티'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인간의 면역세포는 주변 환경을 계속 살피면서 방어 기능을 조율한다.
이를 위해 면역세포는 병원성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침입자에 맞서 어떤 유전자를 켤지를 세포핵에 알린다.
여기에 단어처럼 쓰이는 게 바로 면역세포의 '신호 코돈(signaling codons)'이다. 코돈은 유전정보의 최소 단위를 말한다.
각각의 신호 코돈은 DNA 결합 단백질의 연속 작용으로 구성되고, 이 단백질은 DNA와 짝을 지어 적절한 유전자를 활성화한다.
이 과정은 전화선을 통해 연속해 전달되는 전기 신호가 합쳐져 대화를 구성하는 단어로 바뀌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과학자들이, 인간 면역계의 대식세포가 면역 반응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데 사용하는 6개의 '단어', 즉 '신호 코돈'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또 이들 단어 중 2개가 잘못 사용되면서 엉뚱한 유전자가 활성화해 '셰그렌 증후군(Sjogren's syndrome)'이 생긴다는 것도 밝혀냈다.
셰그렌 증후군은 상시적인 안구 건조와 각막 궤양 등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 자가면역 질환인데 지금까진 만성 염증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UCLA의 알렉산더 호프만 미생물학 석좌교수 연구팀은 11일(현지 시각), 셀 프레스(Cell Press)에서 발행하는 저널 '이뮤니티(Immunity)'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은 호프만 교수는 "인간의 세포는 진화 과정에서 언어와 유사한 면역 반응 코드를 쓰게 된 것 같다"라면서 "잘못 사용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 코드를 풀어내는 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대식세포(macrophages)는 몸 안의 박테리아, 죽은 세포, 잠재적 유해 입자 등을 제거하는 데 특화된 면역세포다.
먼저 건강한 생쥐의 대식세포를 첨단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면역 위협과 연관된 6개의 특정 '코돈 단어(codon-word)'를 확인했다.
그런 다음 인간의 셰그렌 증후군과 유사한 돌연변이를 가진 생쥐의 대식세포를 같은 방법으로 관찰했다. 이 병이 '코돈 단어' 사용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해독한 코돈 단어 6개 중 2개에서 잘못이 발견됐다.
비유하자면 '길 아래의 공격자에게 대응해'라고 해야 할 것이 '집안의 공격자에게 대응해'라고 전달된 것과 비슷했다.
셰그렌 증후군이 '코돈 단어'의 혼선으로 생긴다는 건 이렇게 확인됐다.
만성 염증의 결과가 아니라 엉뚱한 유전자의 활성화에 따른 자가 면역 반응이 문제였다.
이번에 처음 해독된 6개의 코돈 단어는, NFκB라는 전사 인자의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코드에서 발견됐다.
대식세포와 같은 면역세포가 서로 다른 유형의 면역 위협에 맞춰 적절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건, 병원체의 존재를 감지하는 면역세포 수용체와 여러 종류의 방어 유전자를 연결하는 '신호 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NFκB도 이런 신호 경로 중 하나지만, 실제론 병원체에 대한 면역세포 반응을 제어하는 핵심 조절자로 알려져 있다.
대식세포의 '신호 코돈' 해독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호프만 교수는 이를 '로제타 스톤'의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비유했다.
모두 1만2천여 개의 면역세포가 27개 유형의 면역 위협에 반응해 관련 유전자와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을, 배열 가능한 NFκB의 역학 관계를 토대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900여 개의 세 문자 단어(three-letter words)를 후보군으로 추려낸 뒤 기계 학습 알고리즘을 이용해 대식세포의 면역반응 모델을 완성했다.
che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