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조지아서 '흑인 린칭 면죄부 오명' 시민체포법 158년만 폐지
'일반인에 용의자 체포권한' 부여해 논란…백인에 면책특혜 비판론 제기돼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의 흑인 인종 차별 역사에서 백인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거셌던 시민체포법이 조지아주에서 사실상 폐지됐다.
AP통신에 따르면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남북 전쟁 시절에 만들어진 시민체포법을 철회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다.
남북전쟁 기간인 1863년 제정된 이 법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경찰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 법의 연원은 중세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에는 범죄가 발생해도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법기관이 바로 범인을 잡을 수 없어 일반인에게도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러한 시민 체포의 전통은 미국 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져 조지아를 포함해 미국 40개 주가 법률로서 보장해 왔다.
하지만 이 법이 흑인 인종 차별과 총기 보유의 역사 등과 맞물리면서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AP는 이 법의 반대론자들은 과거 도망간 노예를 검거하거나 흑인에 대한 초법적 폭력과 살인을 뜻하는 린칭(lynching)을 정당화하는 데 시민체포법이 악용됐다면서 폐지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켐프 주지사는 조지아가 이 법을 폐지한 첫 번째 주가 됐다면서 "우리는 오늘 남북전쟁 시대의 법을 인명과 재산에 대한 정당방위라는 신성한 권리와 균형을 이룬 조항으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새 규정은 구경꾼이나 목격자에게 사람을 구금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방어, 주택 보호, 폭력적 흉악범죄 방지 등이 아닌 경우 누군가를 구금하기 위해 치명적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사람을 구금하더라도 적정한 시간 내에 경찰이 도착하지 않을 경우 구금된 이를 소지품과 함께 풀어주도록 했다.
이 법은 작년 2월 조지아주에서 25세의 흑인 남성 아머드 아버리가 백인 부자(父子)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한 뒤 다시금 큰 논란의 대상이 됐다.
총격을 가한 부자는 아버리가 일대에서 발생한 불법침입 사건의 용의자로 여겨 뒤쫓았지만 저항하는 바람에 총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은 부자의 행위가 시민체포법에 따라 이뤄졌다고 보고 이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아버리가 인근 공사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긴 했지만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현장에서 나오는 감시카메라 영상이 공개되면서 경찰이 부당한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경찰은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등 논란이 커지자 이들 부자와 이웃 1명을 포함한 3명을 증오범죄 등 혐의로 기소했다.
AP는 다른 주에서도 이 규정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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