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 100일] ① 국제사회 무기력 속 무력충돌

입력 2021-05-10 08:00
수정 2021-05-10 08:22
[미얀마 쿠데타 100일] ① 국제사회 무기력 속 무력충돌

치닫는 미얀마…'파탄국가' 목전

5세 유아 등 약 800명 사망…경제 10%↓·국민 절반 빈곤 등 2005년 회귀 우려

유엔은 '중국 몽니'에 무기력하고 아세안 폭력중단 합의는 '휴짓조각' 직전

시민방위군으로 무장투쟁 전환…연방군 창설시 내전 불가피 '제2의 시리아' 되나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11일로 지난해 11월 총선 부정을 명분으로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100일이 된다.

이 기간 수년래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무자비한 유혈 탄압이 미얀마 군부에 의해 자행되면서 전세계가 경악했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무기력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내정이라는 중국의 '몽니'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즉각 폭력 종식' 등 5개 항 합의는 군부의 모르쇠로 휴짓조각 직전이다.

국제사회에 절망한 반군부 진영은 자체 무장투쟁을 선언했다. 소수민족 무장조직이 참여하는 연방군 전 단계다. 연방군까지 창설되면 내전은 불가피하다.

이러면서 국민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곳곳에서 파탄국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 800명의 '피'…국군의 날에 무려 114명 숨지고 5세 유아도 희생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총격 등 군경 폭력에 사망한 미얀마 시민은 7일 현재 774명이다.

18세 미만 청소년과 아동도 50여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5세, 7세 유아까지 총에 맞아 숨지면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3월27일 '미얀마군의 날'에는 최소 114명이 무차별 총격에 쓰러졌다.

몽유와 지역에서 거리 시위를 주도하던 웨이 모 나잉(26)이 체포돼 반역죄 등 혐의로 기소되는 등 시위 주동 인사들도 계속해서 체포·구금됐다.

이 숫자도 4천800명이 훌쩍 넘는다.

폭행 및 고문 정황과 함께 생후 20일 된 신생아까지 인질로 삼는 등 반인도적인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 파탄 국가 경고음…국민 절반 빈곤층 2005년으로 '역주행' 우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미얀마 민생은 쿠데타 이후 파탄 일보 직전이다.

지난 10년간 민주화 바람 속에서 불완전하나마 성장했던 경제는 뒷걸음질 치고, 국민 삶도 피폐해졌다.

세계은행은 올해 미얀마 국내총생산(GDP)이 10% 뒷걸음질 칠 것으로 내다봤다.

공장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수출품의 약 25%를 차지하던 의류산업은 새 주문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위대 활동을 막기 위한 인터넷 제한도 금융, 요식업 등 경제 활동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

또 의료·교육은 물론 은행·항만·철도 등 주요 분야에서 시민불복종 운동(CDM)이 확산한 것도 타격을 줬다.

국민들의 고통에 찬 신음은 더 커지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쿠데타까지 겹치면서 내년에는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이 빈곤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UNDP는 군부 통치하에서 인구 절반이 가난에 허덕였던 2005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도 미얀마에서 300만명 이상이 굶주림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용평가회사 피치그룹 산하 컨설팅업체 피치솔루션스는 지난달 초 보고서에서 미얀마 경제가 올해 20% 뒷걸음질 칠 것으로 전망했다.

반군부 세력과 군부간 무장 충돌이 예상된다면서 미얀마가 '파탄 국가'를 향해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 유엔은 '중국 몽니'에 무기력…아세안 합의는 '휴짓조각'

쿠데타 100일은 국제사회가 반인류적인 범죄에도 강대국 '몽니'에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간이기도 하다.

미국 등 주요 서방국들이 개별적으로 군부 장성 및 군부 관련 기업들에 대해 제재를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수 십년간 미얀마를 통치해 온 군부는 제재에 익숙한데다, 중국을 '뒷배'로 의지하며 국제사회 비판에는 귀를 닫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말로만 규탄' 성명을 내는 데 그쳤다.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물론 러시아가 '내정'이라는 이유로 군부에 대한 안보리 제재를 반대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유엔 자체가 소극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온라인 공개토의에서 "유엔 사무총장도 폭력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미얀마 군부와 직접 대화하고 사태를 중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얀마 등 10개국이 회원인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지난달 24일 ▲ 폭력 즉각 중단 ▲ 특사 및 대표단의 미얀마 방문 등 5개 항에 합의했다.

그러나 2주가 넘도록 후속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자 군부는 "아세안 제안은 미얀마가 안정된 이후에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합의를 제안으로 격하하고, 준수도 아닌 고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약속을 지킬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연합뉴스에 "아세안 정상회의 이후 2주일이 지났는데도 특사 임명이나 인도적 지원 논의, 미얀마 방문 준비 등은 진전이 없다"면서 "외교관들이 옥신각신 토론하는 동안, 사람들은 미얀마 거리에서 매일 죽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 반군부 무장투쟁 시작…연방군 창설시 내전 불가피 '제2의 시리아'

국제사회가 군부를 압박하지 못하고, 군부는 유혈진압을 계속할 것을 시사하면서 반군부 진영도 기대를 접고 자체적인 무력 투쟁에 나섰다.

총선 당선인들과 소수민족 주요 인사들이 참여해 지난달 중순 출범한 국민통합정부(NUG)는 최근 시민방위군(PDF)을 창설했다고 선언했다.

시민방위군은 소수민족 무장 조직들이 참여하는 연방군의 전 단계다.

시민저항군과, 반군 캠프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 미얀마 청년들이 참여할 전망이다.

그러나 소수민족 무장조직도 무기 지원이나 군사훈련 등을 통해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대행인 두와 라시 라 부통령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소수민족 무장조직의 도움을 받아 시민방위군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얀마 사태는 시위대에 대한 미얀마군의 일방적 학살 양상에서, 점차 양 측간 무력충돌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사가잉 지역과 친주에서는 재래식 소총 및 사제 지뢰로 무장한 시민저항군이 군경과 충돌하면서 각각 10여명의 미얀마군을 사살했다고 현지 매체가 전하고 있다.

양곤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는 사제 폭발물 폭발이 이어지고 있다.



카친독립군(KIA)도 미얀마군 헬리콥터를 격추하는 등 카렌민족연합(KNU)과 더불어 미얀마군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시민방위군 투쟁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면 연방군 창설도 속도를 낼 수 있다.

결국 쿠데타 100일을 기점으로 미얀마 쿠데타 사태는 내전을 향해 움직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미얀마 전문가인 리처드 호시는 연합뉴스에 "군은 반군 진영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쿠데타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이고, 미얀마인들 다수는 필요하다면 폭력을 사용해 군부를 전복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다.

라시 라 부통령도 "NUG는 시민방위군이 완전한 의미의 강력한 군대가 되도록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도 "연방군 창설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방군 창설은 필연적으로 전면적 내전을 가져오게 되고 그런 면에서 미얀마는 제2의 시리아가 될 것"이라면서 "시리아 내전과 규모도 기간도 결과도 다르겠지만, 이것이 미얀마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군부에 대해 가능한 즉각적인 조처를 위한 행동에 나서라고 요청했던 이유"라고 지적했다.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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