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디지털 위안화가 온다…화폐전쟁 서막인가
소액결제 시작하지만 위안화 국제화로 '달러제국' 도전…한국도 영향권
미국도 예의주시…사용처 추적 가능해 '중국 특색 빅브러더' 강화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상하이(上海) 최대 번화가 난징둥루(南京東路) 지하철역에 설치된 일부 음료 자동판매기는 중국에서 널리 쓰이는 알리페이, 텐센트페이 외에도 디지털 위안화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민은행의 비공개 시험에 참여한 이들은 알리페이를 쓸 때처럼 간단히 자기 스마트폰 카메라로 자판기 QR코드를 스캔하면 음료를 사 마실 수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전철역 한복판에 디지털 위안화 결제가 가능한 자판기가 나타난 것은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디지털 위안화가 현실 세계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중국은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화 정식 도입을 위한 기술적 준비를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작년 10월 선전(深?)을 시작으로 쑤저우(蘇州), 상하이, 베이징(北京), 청두(成都) 등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공개 시험 테스트를 벌였다.
공개 시험 참여 누적 인원은 83만여명, 이들에게 무상 지급된 디지털 위안화 규모는 1억4천만 위안(약 240억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안팎에 전면적으로 공개하기에 앞서 실무 준비를 거의 마쳤다고 본다.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는 보고서에서 "디지털 위안화 도입 준비가 기술적·실용적 측면에서 거의 완료됐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 디지털 위안화로 '달러 제국' 균열내려는 중국
중국이 도입하려는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 내 사용에 그치지 않고 향후 미국 달러화 중심의 국제 경제 질서에 유의미한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디지털 위안화가 우선은 자국 내 소액 현금 결제를 대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외부의 경계심을 늦추려 하는 모습이다.
리보 인민은행 부행장은 지난달 보아오포럼에서 "적어도 당장은 주로 국내 사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달러화나 다른 국제통화를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 법정 디지털 화폐를 활용해 위안화 국제화를 도모함으로써 '달러 제국'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사실 디지털 위안화 도입이 곧바로 위안화 국제화로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이 디지털 화폐 전환 시기를 맞아 앞서 판을 주도함으로써 위안화 국제화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중국 정부 직속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의 투융자연구센터 주임 황궈핑(黃國平)이 잡지 은행가(銀行家)에 실은 논문은 중국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디지털 위안화 출현을 계기로 국제 통화 및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화의 주도적 지위가 약해질 수 있어 위안화 국제화에 동력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유관국이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통해 미국과 유럽 등이 국제 결제·청산 시스템 통제권을 이용해 부당하게 내린 제재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국제 무역·결제 업무에서 사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고 관련 준비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인민은행은 지난 2월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가 참여한 법정 디지털 화폐 역외 결제 모색 국제 프로젝트에 가입했고 최근에는 홍콩인들을 상대로 처음으로 디지털 위안화의 역외 사용 테스트도 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당연히 미국의 신경을 긁는다.
미국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통해 특정 국가를 국제 금융망에서 배제해 고립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현재 국제 지급 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가량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활용해 '달러 제국'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독자 지대를 건설한다면 자국의 힘이 약화할 수 있다고 미국은 우려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에 경계심을 키워가고 있으며 일부 관료들은 중국의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상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통화(방식)는 이곳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견제구성 최근 발언 역시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를 보는 미국 측의 부정적 인식 단적으로 보여준다.
◇ 알리바바·텐센트 독점한 '거래' 빅테이터 국가 이동
중국 내부 측면에서도 디지털 위안화 도입은 유의미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간 '인터넷 공룡'인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주도하는 기존의 중국의 디지털 경제의 판을 뒤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와 텐센트의 위챗페이는 중국의 전자결제 시장의 약 94%를 장악한다. 그런데 당국의 적극적 지원 속에서 디지털 위안화 보급이 확대되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갈 것이 자명하다.
업계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면 결제 시장에서 단기간에 최소 10% 이상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민감한 개인의 거래 내역이 담긴 빅데이터의 주도권에 변화가 생긴다는 점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독식하던 중국인들의 결제 정보 중 상당량이 인민은행으로 넘어오게 된다.
작년 10월 마윈(馬雲)의 당국 정면 비판을 계기로 중국은 '인터넷 공룡'에 채찍을 들었다.
당국은 금융 시장에서 민간 인터넷 기업들이 영향력을 축소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데 이와 동시에 디지털 위안화 도입 움직임도 활발해진 것은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디지털 위안화의 도입으로 안 그래도 '빅 브러더'에 비유될 정도로 강력한 중국 공산당의 사회·경제 통제력은 더욱 강력해지게 됐다.
지폐나 동전으로 된 현금과 달리 새로 도입될 디지털 위안화는 당국의 정밀 추적이 가능하게 설계됐다. 지금까지 거리 곳곳에 CCTV가 촘촘하게 설치돼 있었다면 앞으로는 집 내부에까지 CCTV가 설치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인민은행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소액 거래의 경우에도 범죄 혐의가 의심되면 법적인 절차를 밟아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즉 평소에는 개인 집 안에 달린 CCTV를 수시로 모니터링하지는 않지만 문제가 생기면 녹화된 영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법정 디지털 화폐 추진 움직임에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중국과 경제적 인적 교류가 많은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빨리 디지털 위안화의 영향권에 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깝게는 코로나19 대유행 전까지 중국 관광객이 많은 서울 명동 일대 상점이나 시내 대형 면세점 등에서는 알리페이나 유니온페이 카드 같은 중국 지급 수단이 많이 쓰였는데 향후 국내 상업시설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쇼핑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
또 나아가 중국은 이미 자국의 강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석유 대금 결제 등에서 위안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중국 바이어 측의 강력한 요구가 있다면 한국 기업이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 압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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