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국민투표법' 개정 잰걸음…개헌 논의 본격화 가능성
집권 자민당 올 정기국회 개정안 처리 추진에도 '파란불'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의 헌법 개정 절차를 정한 국민투표법의 새로운 개정안에 여야가 사실상 합의해 개헌 논의가 본격화할 환경이 조성됐다.
일본 중의원 헌법심사회는 6일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쳐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소속 의원 등의 다수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에 앞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郞) 간사장을 만나 내달 16일까지인 올 정기국회에서 이 개정안을 중·참의원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집권 자민당은 오는 11일 중의원 표결을 거친 뒤 참의원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법률안은 국회 하원과 상원 격인 중의원과 참의원 본회의를 각각 통과해야 발효한다.
국민투표법 개정안은 그간 표결 자체에 응하지 않았던 입헌민주당이 제시한 내용을 반영해 올 정기국회에서 무난하게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올 정기국회에서 국민투표법이 개정되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제정돼 올해 5월 3일로 시행 74주년을 맞은 일본 헌법은 96조에 중·참 양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국회가 발의하고 국민투표에서 과반 찬성으로 개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두고 있지만 개헌 절차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개헌을 추진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1차 집권기이던 2007년 '국회발의 후 60일부터 18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한다'는 내용의 국민투표법이 제정됐다.
이어 2014년 개헌 투표 참가 연령을 20세 이하에서 18세 이하로 낮추는 1차 국민투표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번 개정이 성사되면 2차 개정에 해당한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사실상 합의해 준 이번 개정안은 개헌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의 투표 기회를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지역을 묶는 공동투표소를 역이나 상업시설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사전 투표 환경 등을 확충하도록 하고 있다.
또 부모와 함께 투표소에 들어갈 수 있는 연령을 유아에서 18세 미만으로 높이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내용은 이미 국회의원 및 지방 선거에 적용되는 공직선거법에 모두 포함돼 있다.
이번 국민투표법 개정안은 개헌을 '당시'(黨是·정당 방침)로 삼고 있는 자민당이 2018년 6월 공명당, 일본유신회 등과 함께 국회에 제출했지만 올 정기국회까지 8차례 계속 심의 사안으로 넘겨지는 등 지난 3년 동안 법안 심의 작업이 진전을 보지 못했다.
국민투표법 개정이 본격적인 개헌 논의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 야당세력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헌민주당이 요구해온 투표일 14일 이전의 TV·라디오 광고 규제 강화 방안을 여당 측이 받아들이면서 개정안 심의 작업이 전기를 맞았다.
입헌민주당이 국민투표법 개정안의 국회 표결에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개헌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커진 것도 한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주요 신문이 올해 헌법기념일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제정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이 반대보다 많아지는 등 민심 동향에 변화가 나타났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는 45%가 개헌 필요성을 지적했지만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은 44%를 기록했다.
작년 조사 때와 비교해 개헌 찬성 비율이 2%포인트 올랐고, 반대 비율은 2%포인트 하락했다.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도 개헌 찬성(48%)이 반대(31%) 의견보다 많았고,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도 개헌 지지파(56%)가 반대파(40%)를 웃돌았다.
찬반이 팽팽하던 개헌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이 눈에 띄게 우세해진 것은 작년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위기사태 대응에 취약하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불거지고, 군사력을 키우는 중국의 위협론이 급격하게 부상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또 아베 전 총리와 비교해 이념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옅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 출범을 계기로 '전쟁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 변화할 수 있는 개헌 가능성에 대한 거부감이 약해진 것이 개헌 지지 여론을 키운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스가 총리는 지난 3일 개헌파가 주최한 헌법기념일 행사에 "현행 헌법은 제정한 지 70년 넘게 흘러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바꿔야 한다"며 헌법 개정 논의를 진척시키는 첫걸음으로 국민투표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목표로 삼겠다고 말했다.
국민투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올 9~10월 이전에 치러질 중의원 선거(총선거)를 계기로 개헌 논쟁이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은 이미 헌법상 근거가 없는 조직인 자위대의 헌법 명기와 대형 재난 발생 때 일시적으로 국가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개인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긴급사태 조항 신설 등 4개 항의 개헌 목표를 제시해 놓은 상태다.
이 가운데 자위대의 헌법 명기 방안은 일본이 태평양전쟁 패전 후에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 포기와 무력 불보유 및 교전권 부인을 규정한 기존 헌법 9조에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 찬반 세력 간의 격렬한 대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개헌 자체에 적극적이지 않고, 야권에선 국민민주당과 일본유신회를 제외하고 다수 세력인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등이 개헌에 신중한 입장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올해 총선에서 낙승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자민당의 바람대로 개헌이 원활하게 추진될지 매우 불투명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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