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공사 핵심자산 분리하고 정부는 최소한만 지원하라"
해외자원개발 2차 TF 발표…자원 공기업 통합은 중장기 과제로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41년 만에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한국석유공사의 정상화를 위해 핵심 우량자산을 분리·운영하고, 필요한 경우 정부가 최소한으로 지원하라는 권고안이 나왔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또는 그 외 자원 공기업을 통합하는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라는 권고도 제시됐다.
해외자원개발 혁신 제2차 태스크포스(TF)는 28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 부실자산 출구전략 수립·정부지원 원칙 완화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2차 TF는 지난 9개월간 협의를 거쳐 ▲ 전략적 자산관리 강화 ▲ 공기업 지속가능성 확보 ▲ 산업생태계 활력 제고 등 3대 원칙하에 권고안을 도출했다.
우선 주요 자원개발 프로젝트와 관련, 급격한 유가 변동 등 대외적인 리스크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각 공기업에 우량자산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라고 주문했다.
경제성과 전략성이 모두 미흡한 석유·가스 분야 6개 사업에 대해 출구전략을 수립하고, 석유공사는 수익성이 낮거나 전략성이 부족한 사업의 처분까지 고려한 비상경영전략을 수립하도록 했다.
구체적인 사업명은 노출될 경우 추후 시장에서 헐값에 팔릴 우려가 있어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유가 하락 단계별 생산량 조절, CAPEX(설비투자액) 투자 조정 등으로 사업관리 시스템을 개선하고 생산단가 절감을 통한 생산 효율화에 나설 것을 제언했다.
기존 1차 TF의 구조조정 원칙은 현 상황에 맞게 수정·보완했다.
기존에는 해외자산 매각 시 국내 민간기업에 최우선 매각하도록 했으나 앞으로는 최적 매수자에게 매각하되, 매각 조건이 유사한 경우에는 국내 기업을 우선 매수자로 고려하도록 했다. 민간기업의 투자가 위축된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매각 시한을 설정하지 않는 기존 원칙은 유지하면서 과도한 매각 지연을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선 구조조정, 후 정부 지원' 원칙도 다소 유연하게 바꿨다.
공기업이 자체적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하되, 정부가 자원 안보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지원을 검토하도록 했다.
박중구 2차 TF 위원장(서울과기대 교수)은 "민간기업들이 석유가스 시장에서 대부분 철수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한 마중물로서의 공기업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2차 TF는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도록 제3자 매각체계 도입을 검토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제3차 매각은 공기업이 아닌 별도의 기관이 자산매각을 심의·의결하는 것이다. 광물공사의 경우 최근 광해광업공단법 제정에 따라 해외자산관리위원회가 자산매각을 심의·의결하고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집행하게 됐는데, 다른 공기업도 해외자산관리위원회와 유사한 조직 구성을 검토하라는 의미다.
자산매각 관련 규정에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주문도 했다.
해외 자원개발이 여러 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루는 플랫폼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 경쟁입찰 원칙을 재고하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입찰보증금·계약보증금 제도를 매각 촉진을 위해 손보도록 했다.
◇ 재무개선 전략 수립·핵심자산 분리 등 거버넌스 개편
2차 TF는 공기업 재무위기가 향후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고, 각 공기업에 2029년의 재무개선 목표를 제시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석유공사에는 2029년 완전자본잠식 해소를 위한 재무개선 목표 설정과 유가에 의존하는 사업구조 개편 전략을 세우도록 했다.
가스공사에는 2029년 글로벌 가스기업 수준의 부채비율(280%) 달성을 위한 재무개선 목표를 정하고 재무 건전성 확보 전략을 마련하도록 했다. 현재 가스공사의 부채비율은 340% 정도다.
광물공사는 광해공단과 통합될 예정이어서 재무 목표를 따로 설정하지 않았다.
공기업의 거버넌스 개편 권고안도 내놓았다.
석유공사는 재무 상황 개선과 기능 정상화를 위해 핵심 우량자산을 분리·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했다.
박 위원장은 "물적·인적 분할을 통해 자회사를 두거나 새로운 법인을 만드는 등 여러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스공사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안정적인 가스자원 공급을 위한 해외자원개발 투자 전략을 수립하라고 주문했다.
정부에는 거버넌스 개편 과정에서 석유공사의 고강도 구조조정에도 재무 상황의 정상화가 어려우면 최소한의 지원을 검토하도록 했다. 지원 방안으로는 정부 출자 등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장은 "이러한 거버넌스 개편 없이는 석유공사 혼자 힘으로 완전자본잠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 공기업을 통합해 '자원안보 종합 공기업'을 만드는 방안은 중장기적인 검토 과제로 남겨뒀다. 이에 따라 자원 공기업 통합에 관한 논의는 차기 정부에서나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석유공사-가스공사 통합 논의가 예전부터 있었으나 동반 부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고, 비상장기업과 상장기업 간 합병이 쉽지 않은 만큼 급하게 결론 낼 사안이 아니라고 TF가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2차 TF는 자원개발 생태계 회복을 위해 리스크가 높은 탐사 분야와 민간기업의 참여가 어려운 전략적 중요 지역을 중심으로 공기업이 신규 자원개발에 나서도록 했다.
석유공사는 경영 정상화를 전제로 2025년 이후 신규 투자 계획을 내부적으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 특별융자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공공-민간 협력 확대를 위해 정부의 특별융자 지원대상에 공기업을 포함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권고가 공기업·민간·정부가 합심해 우리나라의 자원개발이 놓인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며 "특히 공기업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조속히 환골탈태하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추후 기획재정부 등 예산 관련 관계부처 협의와 법 개정 등을 거쳐 권고안 내용을 최대한 이행할 계획"이라며 "정부 지원 여부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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