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공포에 시달리는 아이티인들…납치범죄 작년에 3배 급증
범죄조직이 몸값 노리고 납치…몸값 안 주면 살해도 일삼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사는 5살 여아 올슬리나는 지난 1월 길에서 놀다 납치됐다.
거리에서 땅콩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엄마는 납치범이 요구한 몸값 4천달러(약 444만원)를 낼 수 없었고, 올슬리나는 일주일 후 목이 졸린 시신으로 돌아왔다.
카리브해 빈국 아이티가 급증하는 납치 범죄로 고통받고 있다.
유엔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티에서 보고된 납치는 모두 234건으로 2019년에 비해 3배 증가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6일(현지시간) 전했다.
보복을 우려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많기 때문에 실제 납치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납치범들은 주로 교사, 공무원, 성직자, 소규모 자영업자 등과 같은 중산층을 노린다. 몸값을 낼 여력은 있지만, 개인 경호원을 고용할 만큼 부자는 아닌 사람들이다.
지난 11일에는 프랑스인을 포함한 가톨릭 사제 5명과 수녀 2명, 신자 3명이 괴한에 납치됐다. 이 가운데 4명은 풀려났지만 나머지 6명의 행방은 아직 알 수 없다.
이달 초엔 페이스북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예배 도중 무장 괴한이 침입해 목사와 교회 사람들을 납치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달에는 월드컵 예선전을 위해 아이티를 찾은 벨리즈 축구 대표팀이 탄 버스가 무장 괴한에 붙잡혔다 풀려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몸값을 노리고 올슬리나와 같은 서민을 납치 대상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몸값을 내지 못하면 살인도 일삼는다.
지난해 11월 퇴근길에 납치됐던 29세 의사는 친구들이 간신히 납치범들과 협상해 몸값을 주고 풀려났지만, 몸값을 내지 못해 갇혀있던 다른 피랍자들의 생사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극심한 빈곤과 정치 불안, 연이은 자연재해로 눈물이 마를 날 없던 아이티는 지난 2004년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당시 대통령 축출 이후에도 범죄가 급증한 적 있다.
유엔은 아이티 안정을 위해 평화유지군을 파견했고, 2017년 10월 평화유지군이 철수하자 경제 악화와 맞물려 조직범죄가 다시 늘어났다고 로이터가 인권운동가 등을 인용해 설명했다.
정치권도 범죄 증가에 일조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브넬 모이즈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가라앉히고 야권 성향이 강한 지역 주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범죄조직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범죄조직과의 관련 의혹을 부인하며, 범죄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년간 경찰 예산을 늘렸고 지난달에는 납치범죄 전담 태스크포스도 만들었지만 납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피랍 공포에 시달리는 아이티인들은 정부가 범죄조직을 비호한다며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납치 범죄의 급증과 치안 악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더 허약해진 아이티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아이티 경제학자 에체르 에밀은 로이터에 "납치 범죄가 경제를 죽이고 있다"며 관광과 여가산업이 크게 위축됐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