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후 태어나 비틀스 듣던 디아스카넬, 쿠바에 변화 가져올까
라울 카스트로가 낙점한 후계자로 쿠바 1인자 자리 올라
기존 체제 급격한 변화는 없을듯…개혁·개방속도 빨라질지 주목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라울 카스트로의 뒤를 이어 19일(현지시간) 쿠바 공산당 새 총서기(제1서기)로 선출된 미겔 디아스카넬(60) 대통령은 비틀스의 팬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음악 취향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비틀스가 한때 쿠바에서 '금기'였기 때문이다.
공산국가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 시절인 1960∼1970년대 쿠바 젊은이들에게 이념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며 방송 등에서 비틀스 음악을 트는 것을 막았다.
금지된 음악을 들었다는 것이 공산체제와 개방에 대한 태도를 엿볼 힌트처럼 여겨졌기에, 지난 2018년 그가 라울 카스트로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부터 외신들은 그의 음악 취향에 주목했다.
자전거 여행을 즐기고 청바지도 즐겨 입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카스트로 형제 등 혁명 세대와는 다른 '신세대'임은 분명하다.
그는 쿠바 혁명 이듬해인 1960년 중서부 산타클라라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선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청년 시절부터 공산당에서 활동한 그는 1994년 비야클라라주 당 총서기로 임명됐고, 주민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실용주의적인 관리자로 명성을 쌓았다.
2003년 공산당 정치국에 합류했으며, 라울 카스트로가 형 피델에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에 오른 이듬해인 2009년 고등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어 2012년 행정부 2인자인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에 지명되며 카스트로 형제를 이을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AP통신은 그간 카스트로 후계자로 거론됐던 여러 젊고 유망한 이들은 지나친 권력욕이나 부적절한 발언 등으로 낙마했으나 디아스카넬은 흔들림 없이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는 2018년 라울 카스트로부터 행정 수반 격인 국가평의회 의장(현 대통령) 자리까지 물려받으며 '포스트 카스트로' 지도자 자리를 굳혔고, 이날 실질적인 최고권력인 공산당 총서기직까지 승계하며 쿠바 1인자로 우뚝 섰다.
오랫동안 디아스카넬을 지켜보며 후계자로 낙점한 라울 카스트로는 이날 "디아스카넬은 즉흥적으로 선출된 게 아니라 고위직에 오를 만한 모든 자격을 갖춘 젊은 혁명가로 심사숙고해서 선택된 것"이라고 말했다.
디아스카넬은 지난 60여 년간 쿠바를 이끈 카스트로 형제와 달리 혁명 세대도 아니고 게릴라 출신도 아니다. 군 생활은 의무 복무기간에만 했다.
이날 쿠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군복 차림의 라울 카스트로가 양복을 입은 디아스카넬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그러나 이념적으로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카스트로 형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젊을 때는 조용하고 온건한 성향이었다가 집권 후 더 강성으로 변했다는 평가도 있다.
쿠바 정치 분석가인 아롤드 카르데나스는 디아스카넬이 집권 후 어조가 바뀌었다며 "정치적 정통성을 획득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철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실제로 2018년 디아스카넬이 국가수반이 된 이후에도 쿠바 사회에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 올해 들어 이중통화제를 폐지하고 민간 허용 사업범위를 넓히는 등 개혁·개방의 기조는 이어갔으나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 것은 아니었다.
라울 카스트로가 여전히 총서기 자리에 남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디아스카넬도 '연속성'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카스트로 형제들이 모두 퇴장하고 디아스카넬이 전면에 선 이후에도 쿠바에 큰 개혁이나 정책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미 제재 등으로 심화한 경제위기와 인터넷 발달 등으로 쿠바 내부에서 개혁의 필요성과 변화 요구의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개방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
디아스카넬로서는 자신이 강조해온 혁명 정신과 사회주의 기조를 뿌리까지 흔들지 않으면서도 쿠바의 경제 위기와 국민의 요구에 대처하는 것이 큰 과제인 셈이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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