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묵은 과제' 지배구조 개편 이번에는 속도낼까
현대엔지니어링 IPO 추진…정 회장, 상장 후 지분 매각해 실탄 쥐나
이달 말 공정위 총수 변경…현대글로비스 지분도 낮춰야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현대차그룹이 비상장 건설사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IPO)를 계기로 '최대 난제'인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낼지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는 30일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총수(동일인)를 정의선 회장으로 바꿔 지정할 예정이어서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적기라는 전망도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연내 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IPO를 추진 중이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2대 주주로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도 4.68%의 지분이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비상장 주식 시세는 주당 100만원 안팎에 형성돼 있어 현재 시가 총액은 7조5천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상장 후 기업 가치가 10조원에 달한다고 가정하면, 정 회장의 지분 가치는 1조2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후 보유 지분을 매각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실탄 확보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부각되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 현대모비스[012330](21.4%)→현대차[005380](33.9%)→기아[000270](17.3%)→현대모비스 ▲ 기아(17.3%)→현대제철(5.8%)→현대모비스(21.4%)→현대차(33.9%)→기아 ▲ 현대차(4.9%)→현대글로비스(0.7%)→현대모비스(21.4%)→현대차 ▲ 현대차(6.9%)→현대제철(5.8%)→현대모비스(21.4%)→현대차 등 4개의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배구조를 간소화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과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백기를 들고 자진 철회했다.
당시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은 현대모비스를 핵심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으로 나눈 뒤 모듈·AS 부품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시장에서는 작년 말 정 회장의 취임과 맞물려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여건은 이미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일단 엘리엇이 2019년 말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보유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빠져나간 것도 호재다.
여기에 공정위가 이달 말 정 명예회장에서 정 회장으로 21년만에 현대차그룹 총수를 변경할 예정이어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기에 적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 회장이 공정위로부터 동일인으로 지정된 만큼 국내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 출자 구조를 가진 것에 부담을 느끼고 이 같은 구조의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개정된 공정거래법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보탠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이 올해 말부터 총수일가 지분율 20% 이상 상장사·비상장사와 이들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29.99%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과징금을 피하려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해 20%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앞서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2015년 공정거래법 시행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려고 당시 각각 31.88%, 11.51%였던 지분을 30% 이하로 낮추려고 둘을 합쳐 13.39%에 해당하는 500만주 이상을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처분했다. 이 결과 정 회장은 약 7천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번에도 현대글로비스 지분 10% 가량을 매각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고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현금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이후 지분 매각으로 추가 현금을 확보하면 현재 지분율 0.32%에 불과한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영향력을 늘리거나 정 명예회장의 지분 상속을 위한 재원도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증권가에서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블록딜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한다는 소문이 돌며 현대모비스의 주가가 출렁이기도 했다.
정 회장이 지배구조 정점에 오르려면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가 필수다.
시장에서는 일단 2018년 추진했던 개편안을 보완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 전체 기업 가치의 60∼70%를 차지하는 AS 부문을 분할, 상장한 뒤 이를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시나리오 등이 제기된다. 이후 존속 현대모비스가 합병 글로비스에 대해 공개 매수에 나서고 대주주가 이에 참여하는 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대주주 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각각 존속과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존속회사는 존속회사끼리, 사업회사는 사업회사끼리 합병하는 방안, 대주주 일가가 기아차(17.2%)와 현대제철(5.8%)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순환출자 구조를 끊는 방안 등도 언급된다.
재계 관계자는 "2018년의 개편안을 얼마나 정교하게 보완해 시장의 공감을 얻어내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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