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으로부터 투자 압박받은 삼성전자, 선택은?

입력 2021-04-13 10:44
수정 2021-04-13 11:34
백악관으로부터 투자 압박받은 삼성전자, 선택은?

인텔 "차량용 반도체 생산하겠다" 즉답에 삼성전자 고민 깊어질 듯

재계는 삼성전자 오스틴 투자계획 곧 공개할 것으로 전망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미국 백악관이 12일(현지시간)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를 통해 반도체 부족 사태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날 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지만 우리나라 기업중 유일하게 회의에 참석한 삼성전자[005930]는 당장 미국의 요구에 화답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 인텔 "6~9개월 내 차량용 반도체 만들겠다"…삼성에는 부담

삼성전자는 이날 백악관 화상회의에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참석했으나 어떤 주문을 받았는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일단 이번 회의가 반도체 공급부족에 따른 GM·포드 등 미국 자동차 기업의 생산 중단에서 촉발된 만큼 부족한 차량용 반도체 생산 확대 방안 등이 논의됐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네덜란드 NXP 등 차량용 반도체 기업은 물론이고 대만의 TSMC나 삼성전자,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에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에 대처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장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인텔 겔싱어 CEO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인텔 공장 네트워크 안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을 설계 업체와 논의 중이며 6∼9개월 안에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며 백악관의 요구에 답했다.



이는 TSMC 등 파운드리 기업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를 거의 생산하지 않는 삼성전자에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는 메모리 분야에선 글로벌 최강자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

차량용 반도체는 국내 기업들이 주력으로 하는 초미세화 공정을 통해 생산하는 고성능 메모리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PC·클라우드 서버 등 제품 교체 주기가 짧은 IT 기기에 주로 장착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차량용은 최장 10년 이상 운행하는 자동차에 탑재돼 제품 사이클과 보증 기간이 길다는 점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생산을 꺼렸다.

그러나 이날 백악관의 분위기에 따라 파운드리 기능까지 갖춘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공급에 동참해야 할 부담이 커졌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울며 겨자 먹기로 수익성은 포기하고 미국 오스틴 공장에 차량용 반도체 라인을 깔고 생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글로벌 반도체사 미국행 '러시'…"삼성전자 오스틴 투자 계획 조만간 공개" 전망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체계를 강화하고,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선 만큼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내 반도체 생산 시설 투자도 줄이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상회의에 참석해 "오늘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미국의 공급망을 보장할 것인지 말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의 경쟁력은 기업들이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 내에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한 것이다.

그는 "내가 가진 칩(반도체), 웨이퍼, 배터리, 광대역, 이 모든 것은 인프라"라면서 인프라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본다.

이미 미국의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은 새 정부 정책에 부응해 200억달러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두 개의 새로운 팹(공장)을 건설해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의 파운드리 경쟁사인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짓는데 이어, 이번 반도체 공급 부족에 협력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해 3년 간 1천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에 수많은 고객사를 둔 삼성전자도 미국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조만간 추가 투자계획을 확정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에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추가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고 유력후보지인 텍사스주(오스틴)와 새로운 인센티브 방안을 협상중이다. 지난겨울 한파로 오스틴 공장이 '셧다운' 된 이후 사업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현재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계획과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있지만 미국 투자만큼은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백악관의 초청까지 받은 마당에 서둘러 투자계획을 공개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가 미국 내 시설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삼성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배터리 투자 압박도 거세질 듯…중국 눈치 부담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한 미국내 투자요구도 거셀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기차 배터리 역시 자국 중심의 공급망 확충에 필요한 핵심 제품으로 꼽고 있다.

미국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096770]의 ITC 배터리 분쟁에 적극 개입해 10년 수입금지 조처에 대한 거부권을 쓰지 않으면서 양측의 극적 합의를 끌어낸 것도 미국내 배터리 공급망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큰 그림이었다.

당장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합의 직후 미국 투자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3조원이 투입되는 미국 조지아주 1, 2공장은 물론 미국내 추가 투자도 단행할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미국내 2곳 이상에서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의 대규모 선제 투자를 단행하고, 제네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2공장 투자도 상반기 중 결정하기로 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검토에 나선 만큼 배터리 업계에도 청구서가 날아들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분위기에 선제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 못지않게 중국 시장도 중요한 우리 기업에 대해 중국 당국의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요청을 거절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중 패권 다툼 속에 샌드위치 신세인 우리 기업들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