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 허용범위 확대…노후 버팀목 훼손없어야

입력 2021-04-09 17:03
[연합시론]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 허용범위 확대…노후 버팀목 훼손없어야

(서울=연합뉴스) 최근 수개월간 국민연금이 증시에서 줄기차게 주식을 팔아치울 수밖에 없도록 만든 국내주식 투자비중 관련 규정이 논란 끝에 개정됐다. 국민연금은 9일 오후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국민연금 기금운용 목표비중 유지규칙(리밸런싱) 검토안'을 논의한 결과 현재 ±2.0%포인트인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를 ±3.0%포인트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 대신 '전술적 자산배분(TAA)' 허용범위는 ±3%포인에서 2%포인트로 줄여 전체 허용범위는 ±5%를 유지했다. 국민연금은 매년 수립하는 자산운용 계획에 따라 자산별 투자비중을 정하지만, 실제 기금운용에서는 SAA와 TAA에 의해 일정 범위 안에서 이의 증감이 가능하다. SAA는 '국민연금이 설정한 목표 비중을 기준으로 주가 상승·하락 시 이탈이 허용되는 범위'를, TAA는 '기금운용본부 투자담당자가 목표비중을 넘어 투자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각각 의미한다. 특히 SAA 허용범위를 넘어설 경우 국민연금은 범위 내로 돌아가기 위해 기계적 매도에 나서게 된다. 올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비중 목표는 16.8%인데 지난해말 기준 국내주식 비중은 21.2%나 돼 SAA 허용범위의 상단인 18.8%를 훌쩍 넘어섰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부터 기록적인 순매도 행진을 이어왔다.

주식투자자들, 특히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급등세를 보이던 주가가 올해 들어 주춤한 것이 국민연금의 매도공세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와 국민연금에 울분을 쏟아냈다. 국내주식 투자비중을 1%포인트만 줄이려고 해도 국민연금으로서는 8조~9조원의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한다. 주가가 오르면 국내주식 비중도 덩달아 증가하고 매도물량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증시의 상승 고비마다 국민연금의 매도가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는 동학개미들이 분노하는 것도 인간적으로는 이해되는 면이 있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지난달 26일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SAA 허용범위 상향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위원들의 반대로 의견이 양분되자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에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터여서 때아닌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논의가 "동학개미들의 표를 의식한 처사"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로부터 불과 2주 뒤 열린 이 날 회의에서 결국 동학개미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회의에서 "3월말 국내주식의 SAA 비중이 허용범위 상단을 초과해 넉달 연속 허용범위 이탈이 계속되는 시장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궐선거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일부 주식투자자들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혹의 눈길은 여전하다.

누가 뭐래도 국민연금의 존립 이유는 국민의 노후 안전망 역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재산이나 수입이 없는 은퇴자에게는 국민연금이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을 떠받들기 위해 이 소중한 노후보장 역할이 위협받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축소는 불가피하다. 가입자 2천200만명, 적립 기금 855조의 규모를 갖춰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은 한국증시만 바라보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다. 수익성 확보는 물론 위험 분산을 위해서라도 세계로 뻗어나가지 않을 수 없다. 가격이 오를 때 팔아 수익을 챙기는 것은 어느 투자자에게나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기도 하다. 국내주식 비중 촉소를 미루는 것이 증시 안정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연금 규모가 계속 확대돼 왔지만,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연금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연금 지급을 위해 자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국내주식의 비중을 적절히 줄여놓지 않고 그때 가서 한꺼번에 매물을 쏟아낸다면 그 충격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국내주식 투자비중을 늘리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과 같은 기계적인 매도는 억제하자는 조처가 반드시 국민연금의 수익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이론상 가능하다. 그러나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외부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투자자가 수익을 내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다. 정부와 국민연금은 이날의 결정이 최선이었는지 돌아보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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