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비리 의혹으로 해임된 추기경 자택서 성목요일 미사 봉헌(종합)
1일 저녁 예고 없이 베추 추기경 아파트 전격 방문…배경은 확인안돼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을 앞두고 비리 혐의로 해임된 추기경 자택을 찾아 미사를 함께 하는 '깜짝 행보'를 보였다.
교황청 관영 매체인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성목요일인 1일(현지시간) 안젤로 베추 추기경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주님 만찬 미사를 봉헌했다.
주님 만찬 미사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성체성사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가톨릭 전례상 이를 기점으로 부활절까지 이어지는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된다.
미사에는 베추 추기경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추 추기경은 전 세계 신자들의 헌금으로 조성되는 베드로 성금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이권 사업을 친형제에게 몰아주는 등의 비리 의혹이 불거져 작년 9월 교황청 시성성 장관직에서 해임된 인물이다.
당시 교황이 베추 추기경을 직접 불러 해임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추 추기경이 불미스러운 일로 교황청을 떠난 지 약 6개월 만에 의외의 시점과 장소에서 교황과의 재회가 이뤄진 셈이다.
교황은 베추 추기경과 함께 따로 주님 만찬미사를 봉헌하고자 당일 저녁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예정된 공식 미사는 추기경단 단장인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대신 집례하도록 했다.
당시 교황의 미사 불참을 두고 지병인 좌골 신경통 악화에 따른 것이라거나 성삼일의 바쁜 일정을 앞두고 휴식을 취하려는 것 등의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교황이 어떤 배경에서 이러한 결정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교황청 역시 이에 대한 공식 코멘트를 자제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자비나 용서의 의미가 내포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예년과 마찬가지로 성목요일에 가장 소외된 계층을 찾아가는 교황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주님 만찬미사는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거행됐으나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에는 미사 장소가 교도소나 요양원 등으로 바뀌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 계층과 함께 주님 수난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겠다는 교황의 의지가 실린 행보다.
성목요일 전통에 따라 교황이 교도소 수형자 등의 발을 직접 씻겨주는 세족례 장면은 매년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했다는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로마 현지 한 한국인 사제는 교황의 갑작스러운 베추 추기경 자택 방문 소식에 다소 놀랍다는 반응을 나타내며 "현 상황에서 바티칸의 가장 소외된 사람을 찾아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성금요일(2일)과 성토요일(3일) 각각 두 차례의 미사를 집례할 예정이다. 부활절인 4일에는 부활 메시지 및 교황 강복인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라틴어로 '로마와 온 세계에'라는 뜻)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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