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아시아계 향한 야만적 증오범죄 당장 멈춰야
(서울=연합뉴스)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겨눈 무차별 증오 폭행이 잇따르면서 한국 교민을 비롯해 재미 아시아계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세계적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나 남녀 통틀어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최초로 테니스 세계 1위에 오른 일본의 오사카 나오미, 한국계 전 CNN 앵커 메이 리 등 유명인사들의 "증오 범죄를 멈춰달라"는 호소에도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 범죄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여기저기서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계를 향한 흑인 증오 범죄가 이어지며 미국 내 소수 유색인종인 흑인과 아시아계 사이의 갈등으로 부각되는 모양새다. 급기야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우려를 표명하며 아시아계 증오범죄 전담 기구를 만들고 피해자 지원에 들어갔다.
지난달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사건으로 한국인 4명 등 아시아계 여성 6명이 숨진 데 이어 열흘 뒤인 26일에는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서 65세의 필리핀인 여성이 거구의 흑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남성은 "넌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단순한 폭행이 아니라 미국내 흑인들의 아시아계를 향한 분노와 증오가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같은 달 29일에는 맨해튼 지하철 객실에서 흑인 남성이 인도네시아계 유학생으로 알려진 남성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목 졸라 기절시키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미국 사회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총격을 가하고, 때리고, 짓밟고, 목 조르는 분풀이가 이제 더는 이어져서는 안 된다.
미국 내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 총격이나 폭행의 원인을 도식화하기는 어렵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갈등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미국은 코로나19 확진자, 사망자 숫자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다. 수많은 한계기업이 문을 닫아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그중에서도 고용 취약계층인 흑인들의 실직 아픔이 컸을 것이다. 이런 아픔과 분노가 아시아계에 대한 분풀이로 나타났을 수 있다. 여기에 경제·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노골화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반감도 작용한 듯하다. 코로나19 '중국 기원설' 등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가짜뉴스까지 번지면서 전체 아시아계에 대한 분노로 확대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유야 어떻든 이런 야만적이고 반인권적인 증오 범죄가 해마다 세계 각국에 대한 인권보고서까지 내는 미국에서 계속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더욱이 몸집이 큰 흑인 남성이 뉴욕에서 필리핀계 여성을 폭행하는 현장에서 몇 걸음 뒤에 있던 보안요원이 수수방관했다는 대목에서는 분노가 치밀지 않으면 비정상일 것이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5천만 달러에 가까운 피해자 구호기금을 배정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와 정계 지도자들은 증오 범죄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을 넘어 끊임없이 재발 방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난달 애틀랜타 총격사건 이후 희생자 추모와 증오 범죄 규탄대회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대낮에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끔찍한 증오 범죄가 계속됐다. 이쯤 되면 미국 내 아시아계가 느끼는 공포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우리 정부도 미국 정부와 소통하며 미국 내 한인사회의 공포를 줄이고 위로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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