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미사일 개발 위해 가상화폐 해킹…3천600억원 탈취
정유제품 수입 상한선 "몇배 초과"했으나 석탄수출은 코로나로 다소 주춤
모든 사거리 탄도미사일에 핵탑재 가능성…중·단거리는 고체 추진체 전환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핵·미사일 개발을 위해 가상화폐 거래소와 금융기관 등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제재 위반의 '단골 메뉴'인 정유제품 수입 한도 초과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해상 환적 대신 직접 수입을 늘리는 대범함을 보였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31일(현지시간) 공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패널 보고서에는 이처럼 매년 되풀이되는 북한의 다양한 제재 회피 실태와 그 수법이 자세히 소개됐다.
보고서에는 지속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상황과 이란과의 미사일 협력에 관한 지적도 담겼다.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이 자체 조사·평가와 회원국의 보고 등을 토대로 작성한 이 보고서는 15개국으로 구성된 안보리 이사국들의 승인을 거쳤다.
◇ 가상화폐거래소 해킹 후 실제 화폐로 돈세탁…정찰총국이 배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19년부터 2020년 11월까지 3억1천640만달러(약 3천575억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훔쳤다고 한 회원국이 보고했다.
보고서는 "북한과 연계된 해커들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가상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해킹)작전을 계속했다"고 밝혔다.
전문가패널은 지난해 9월 한 가상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2억8천100만달러 상당을 탈취한 해킹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같은해 10월 2천300만달러를 가로챈 두 번째 해킹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해킹)공격의 매개체와 불법 수익을 세탁하기 위한 후속 노력에 근거한 예비 분석 결과는 북한과의 연계를 강하게 시사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훔친 가상화폐를 중국 소재 비상장 가상화폐 거래소들을 통해 실제 화폐로 바꾸는 돈세탁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공격을 주도한 것은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 정찰총국으로 지목됐다. 전문가패널은 정찰총국이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거래소, 그리고 글로벌 방산업체들"을 겨냥해 "악의적인 활동"을 펼쳤다고 지적했다.
전문가패널은 정찰총국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라자루스, 킴수키 등 해킹 조직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북한은 또 합작회사의 해외 계정, 홍콩 소재 위장회사, 해외 은행 주재원, 가짜 신분, 가상사설망(VPN) 등을 활용해 국제 금융시스템에 접근해 불법 수익을 올렸다고 한 회원국이 밝혔다.
◇ 정유제품 수입한도 "몇배 초과"…석탄수출은 코로나에 '주춤'
전문가패널은 한 회원국이 제공한 사진과 데이터 등을 토대로 북한이 연간 50만 배럴의 수입 한도를 "여러 배" 초과해 제재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모두 121차례에 걸쳐 안보리 결의로 정한 수입 상한선을 훨씬 초과해 정유제품을 들여왔다는 것이다.
유조선 탱크의 3분의 1을 채웠다고 가정하면 상한선의 3배를, 절반을 채웠다고 가정하면 상한선의 5배를, 90%를 채웠다고 가정하면 상한선의 8배를 각각 밀수입했을 것으로 한 회원국은 추정했다.
특히 공해상에서 몰래 이뤄지는 '선박 대 선박' 환적 방식보다 대형 유조선이나 바지선으로 정유제품을 남포항 등 북한 영토까지 실어나르는 직접 운송이 지난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정유제품 밀수 선박들의 국제해사기구(IMO) 등록번호나 선박명을 도용해 다른 선박으로 위장하거나 외관 페인트를 변경하고, 자동식별장치(AIS)를 끄거나 조작하는 등 다양한 제재 회피 수법을 활용한 사실이 적시됐다.
또 북한은 지난해 1∼9월 최소 400회 이상의 운송을 통해 최소 250만t의 석탄을 불법 수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의 석탄 수출은 중국 닝보-저우산에서 이뤄졌다고 보고서에 적혔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작년 7월 이후에는 이러한 석탄 수출이 대체로 중단된 상태라고 전문가패널은 평가했다.
아울러 북한은 유엔 결의로 금지된 조업권 해외 판매도 계속한 것으로 다수 국가가 보고했다.
◇ "북 탄도미사일에 핵탄두 탑재 가능"…핵시설도 유지
북한은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문가패널은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이 핵분열성 물질을 생산했고, 핵시설을 유지했으며, 탄도미사일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했다"며 "이러한 개발 프로그램을 위한 원료와 기술을 계속 해외로부터 수입하려 했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북한은 여러 차례의 열병식을 통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새로운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체계를 선보였다고 전문가패널이 판단했다. 모든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을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또 단거리와 중거리 탄도미사일 추진체가 액체에서 고체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고체 연료 추진체는 이동식 발사대에서 쏠 수 있어 기동성이 강화된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 2018년 풍계리 핵실험 갱도를 폭파해 핵 폐기 의지를 강조한 북한이 여전히 이 지역에 인력을 두고 유지하고 있다는 언급도 나왔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작년 태풍으로 조금 부서졌으나 복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회원국은 북한이 영변 핵단지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여전히 가동 중이고, 실험용 경수로도 계속 짓고 있다고 보고했다. 원자로 가동 징후는 없지만 유지·보수는 계속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선 핵시설의 경우 우라늄 농축시설로 확정할 수는 없고 계속 모니터링 중이라고 언급됐다.
이란과의 장거리 미사일 협력설도 반복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미사일 전문가들이 이란 '샤히드 하지 알리 모바헤드' 연구소의 우주발사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핵심 부품 등도 지난해까지 수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유엔 이란대표부 측은 "가짜 정보와 조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벌인 조사"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전문가패널은 또 작년 10월 북한 열병식에서 등장한 드론이 중국 SZ DJI(다장) 테크놀로지의 '매빅 2 프로 타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 북 해외노동자 다수 미송환…"재일교포 축구선수는 위반아냐"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인 해외 노동자 중 다수가 송환 시한(2019년 12월22일) 이후에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세네갈에는 건설 근로자들이, 나이지리아에는 의료 근로자들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는 식당 근로자들이 각각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 군수공업부가 여전히 IT 근로자들의 해외 파견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됐다.
북한의 축구선수 수출과 관련해 전문가패널은 2019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적한 재일교포 3세 선수에 대해 우리 측에 문의했으나, 이른바 '조선적'(총련계가 포함된 무국적) 선수는 북한 국적 노동자가 아니므로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또 지난해 통일교육원 주최 전시회에 제재 대상인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의 작품이 전시됐다는 의혹에 대한 문의도 있었으나, 주최측은 만수대창작사 소속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북한과 금전 거래가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답했다.
이밖에 전문가패널은 제재 대상 선박이 다른 선박으로 위장해 한국의 선박과 정유제품 환적을 시도했다는 정황을 입수했으나, 조사 결과 우리 선박과의 환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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