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나선 미얀마군…외부세계와 단절된 '현대 노예'
NYT, 전현직 장교 심층 인터뷰…"군사들에겐 군부가 유일한 현실"
복종만 강요,군인끼리 집단거주하며 서로 결혼…'사방이 적' 선전에 지속 노출
'15분 이상 기지외출 금지' 통제 심화…"명령에 반문 불가"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병사들은 훈련병 때부터 자신들이 조국의 수호자라는 의식을 주입받는다.
군(軍)은 외부와 단절된 채 집단으로 거주하며 각종 특권을 누린다. 자신들이 민간인보다 우월하고, 사방이 적에 둘러싸여 있다는 선전에 지속해서 노출된다. 상관은 부하의 모든 언행을 수시로 감시한다.
이 때문에 비무장 시민을 죽이라는 명령에도 반문하지 않는다.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전·현직 장교 4명과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외부의 적이 아닌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미얀마군 내부 실상을 전했다.
미얀마 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한 익명 대위는 "군인 대부분이 세뇌됐다"면서 "군인이 자국민을 죽이는 광경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위도 "군은 시위대를 범죄자로 간주한다"며 "병사 대부분은 일생동안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으며 아직도 암흑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달 1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정부가 부정선거를 했다는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
이후 전국에서 전개된 반(反)쿠데타 시위를 실탄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전날에만 시민 최소 114명이 목숨을 잃어 현재까지 민간인 사망자 수가 45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무차별 총격으로 5세 유아를 포함한 어린이마저 죽이고, 무고한 시민을 산채로 불태우는 등 만행을 저지른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군인들이 자국 시민을 이처럼 학살할 수 있는 원인은 외부와 일체 단절된 채 일상이 철저히 통제되는 생활환경이라고 장교들은 입을 모았다.
군인 대다수는 군기지에 살며 군인 자녀는 다른 군인 자녀나 군부와 연관된 인물과 결혼해 가정을 이룬다. NYT는 "현 군부는 서로 다른 가족들 간 서로 얽히고설킨 생태계를 이룬다"라고 묘사했다.
쿠데타 이후에는 허가 없이 기지를 15분 이상 벗어나지도 못하게 할 만큼 감시도 심해졌다.
심리전 훈련을 받은 장교들은 군사들이 속한 페이스북 그룹에 각종 음모론과 허위 정보를 퍼뜨리기도 한다고 NYT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전문가 등을 인용해 설명했다.
이들은 페이스북 피드에 시위대가 화염병 등으로 군부를 공격하는 영상 등을 올려,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주체가 바로 군인이라는 암울한 실상을 가리고 있다.
한 현직 장교는 "대다수 군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들에겐 군부가 유일한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군을 떠난 한 전직 장교는 이런 분위기를 "현대적인 노예제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상관의 모든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 합당한지 부당한지 질문할 수 없다"라고 증언했다.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에서 복무하는 한 군의관은 "국민을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하인이 될 텐데 군에 들어가면 결국 군 지도자들의 하인이 돼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면서 "그러면 날 감옥에 보낼 것. 탈영하면 내 가족을 고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군 내부에서 일부 불만도 감지되지만 조직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은 작다고 장교들은 전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이들은 덧붙였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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