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거 닿으면 찌르르한 통증, 왜 유독 치아에만 생길까
상아질 형성하는 치아 모세포, 치아의 '한랭 감지' 뇌로 전달
정향유의 유제놀 성분, 차단 효과…'사이언스 어드밴시스'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충치를 치료하지 않아 구멍이 생긴 치아는 찬 것에 노출됐을 때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나이가 들어 잇몸이 상해도 치아는 찬 것에 민감해지는데 이를 한랭 민감성(cold sensitivity)이라고 한다.
백금계 화학치료(platinum-based chemotherapies)를 받은 암 환자 중에는 한랭 민감성이 온몸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암 환자는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기만 해도 심한 치통을 느껴 항암 치료를 중단하곤 한다.
치아가 차가운 노출에 민감한 건 생리적으로 특이한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인체의 세포나 조직은 찬 것에 노출됐을 때 대사 작용이 느려진다.
다른 조직과 달리 치아에 한랭 민감성이 생기는 이유를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등의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MGH는 하버드의대의 최대 수련병원이다.
핵심 역할을 하는 건 치아의 상아질을 형성하는 치아 모세포(odontoblast)와 TRCP 5라는 단백질이었다.
치아의 표면은 단단한 법랑질로 싸여 있는데 상아질은 바로 그 아래에 층을 형성해 혈관과 신경이 지나가는 잇몸을 감싼다.
과학자들은 치아 모세포의 한랭 감지 기능을 방해하고 치통을 억제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이 연구 결과는 26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하버드의대의 요헨 레네르츠 병리학 부교수는 "치아의 형태를 유지하는 치아 모세포가 차가운 걸 감지하는 기능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면서 "기초 과학적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결과"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처음부터 TRCP 5 단백질을 한랭 감지 통증의 매개자로 지목했다.
이 단백질의 생성 정보를 가진 유전자가 많은 신체 부위의 신경에 발현한다는 걸 이전의 연구에서 확인했다.
유전자를 조작해 TRCP 5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는 어금니에 구멍이 나도 상처가 없는 생쥐처럼 행동했다.
이번 연구에선 센서 역할을 하는 TRCP 5 단백질이 찬 온도를 감지한 뒤 치아 모세포를 거쳐 신경에 전달하면, 신경이 흥분하면서 통증과 한랭 과민성이 생긴다는 걸 밝혀냈다.
차가운 자극이 가해지면 TRCP 5 단백질은 치아 모세포의 외막에 채널을 열어, 칼슘 같은 다른 분자가 세포 내로 들어와 반응하게 했다.
충치가 심해져 잇몸에 염증이 생기면 TRCP 5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치근(齒根)부터 뇌까지 연결하는 신경의 전기 신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나이가 들어 잇몸이 약해지면 치아가 더 민감해지는 것도, 치아의 새롭게 노출된 부분에서 치아 모세포가 차가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레네르츠 교수는 "대부분의 세포와 조직은 차가움을 느끼면 대사 작용이 늘려지며, 그것이 이식 장기를 냉동 보관하는 이유"라면서 "흥미롭게도 TRCP 5 단백질은 차가울 때 세포의 활성도를 더 높이고, 치아 모세포는 이런 TRCP 5를 통해 차가움을 감지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발치한 인간의 치아에도 TRCP 5 단백질이 잔존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칼슘을 제거한 뒤 에폭시 수지에 담가 뒀던 치아를 얇게 썰어 치아 모세포의 TRCP 5 채널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연구팀은 치아의 한랭 민감성을 최소화하는 약물 표적도 찾아냈다.
전통적으로 치통 치료에 쓰였던 정향유(oil of cloves)의 유제놀(eugenol) 성분이 TROP 5를 차단했다.
유제놀은 지금도 향료나 치과의 방부(防腐)·소독용 재료로 쓰이며 이 성분이 든 치약 제품도 나와 있다.
그러나 연구팀은 화학치료로 심한 한랭 민감증이 생긴 암 환자 등에도 유제놀을 사용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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