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건너서…' 우리말 교가 일본 전역에 울려 퍼져(종합)

입력 2021-03-24 16:39
'동해 바다 건너서…' 우리말 교가 일본 전역에 울려 퍼져(종합)

교토국제고, 日고시엔 첫 시합서 1천명 재일동포 응원 속 승리

교장 "첫 진출에 첫 승 2배로 기쁘다"…졸업생 "눈물 흘렸다"



(효고=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조상 옛적 꿈자리…"

24일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등학교의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 첫 시합 때 이 학교의 우리말 교가가 효고(兵庫)현 소재 한신(阪神)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두 번 울려 퍼졌다.

1회가 끝나고 양팀 교가가 흘러나왔고, 경기가 끝난 뒤 승리팀인 교토국제고 교가가 또 방송됐다.

교토국제고는 이날 미야기(宮城)현 소재 시바타고등학교를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5-4로 역전승했다.

이날 경기는 현지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서 생방송됐다.



올해 처음으로 봄 고시엔에 진출한 교토국제고의 첫 시합은 이날 오전 11시 40분께 시작됐다.

9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봄 고시엔 대회에 외국계 학교가 진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NHK가 모든 경기를 생중계하는 봄 고시엔 대회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회 중의 하나다.

약 1천명의 재일교포들은 고시엔 구장에서 열띤 응원전을 벌였다.

응원단은 학교의 소재지인 교토(京都)는 물론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등 일본 각지에서 전세버스 등으로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로 불리는 고시엔 구장에 집결했다.

이규섭 재일본대한민국 민단 효고현 지방본부 단장은 연합뉴스에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진출은 기적"이라며 "재일동포들도 기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일본) 우익은 한국계 학교가 교토를 대표해 고시엔에 진출해도 되냐고 말한다"며 "특히, 우리말 교가에 대해 항의한다"고 전했다.

그는 "교토에는 캐나다와 프랑스계 학교도 있는데 (이들 학교가 고시엔에 진출하면) 영어나 프랑스어 교가에도 항의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오사카에 있는 한국계 민족학교인 건국학교와 금강학교도 교토국제고를 응원하기 위해 고시엔 구장으로 달려왔다.

홍윤남 건국학교 교장은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진출에 지역 동포들이 기뻐하고 있다. 자랑스럽다"며 "민족학교의 우리말 교가가 고시엔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고 감격했다.

홍 교장은 "고시엔 경기는 NHK로 전국에 생방송된다"며 "일본 곳곳의 교토국제고의 경기를 보고 우리말 교가를 듣게 됐다"고 감회를 밝혔다.

교토국제학원은 1947년 교토조선중학교로 시작해 1958년 학교법인 교토한국학원 법인 설립을 승인받았고, 1963년에는 고등부를 개교했다. 한국 정부의 중학교, 고등학교 설립 인가에 이어 2003년에는 일본 정부의 정식 학교 인가도 받았다.

1999년 창단된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초기엔 야구 미경험자가 대부분이어서 고시엔 진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서히 실력을 키운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2016년부터 지역 대회 4강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2019년 춘계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교토의 야구 명문고로 부상했다. 두산베어스의 신성현 선수도 이 학교 출신이다.



교토국제고를 1986년에 졸업한 재일동포 3세 지영이(54)씨는 "민족학교에 들어간 이유는 우리 민족에 대해서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가 이전했는데, 주변에서 '외국학교는 안 된다'며 반대 운동을 심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제 야구부가 생기고 고시엔에 진출했다니 너무 기쁘고 감격적"이라며 "고시엔은 야구부에는 꿈의 무대, 큰 무대이고, 굳이 야구부가 아니라도 일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청춘 시절의 추억을 느끼게 하는 무대"라고 말했다.

그는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교가가 울려 퍼지는 것을 직접 듣기 위해 고시엔 구장에 왔다고 한다.

이날 경기가 교토국제고의 극적인 승리로 끝난 뒤 이 학교의 박경수 교장은 "(고시엔) 첫 진출만으로도 기쁜데 첫 승까지 하니 두 배로 기쁘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 교장은 "그동안 학교 운동장이 너무 좁아서 내야 연습만 가능했고 외야 연습을 하려면 다른 구장을 빌려서 했는데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이렇게까지 해내다니 감독과 선수에게 정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며 "가능하다면 주변 사유지를 매입해서라도 더 넓은 구장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졸업생 지씨는 연장 10회 말에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첫 승이 확정되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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