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혜택은 한국인, 세금낼 땐 외국인…역외탈세혐의 세무조사
"영주권·시민권 악용해 납세 회피"…소득 부당 해외이전 외국계기업도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국내에 주로 거주하는 A는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그 명의로 해외 부동산을 취득했다. 페이퍼컴퍼니는 이 부동산을 취득·관리한 것 말고는 사업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A는 페이퍼컴퍼니의 지분을 자녀에게 이전하는 방식으로 해외 부동산을 자녀에게 편법증여했다. 해외 부동산을 물려받은 A의 자녀들은 유학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내에 체류해 거주자로서 납세의무가 있는데도 외국 시민권을 내세워 국내 비(非)거주자로 위장하고 증여세 신고를 누락했다. 국세청은 최근 세무조사에서 A일가의 탈세를 확인하고 증여세 수십억원을 추징했다.
의류업체 사주 B는 가족이 거주하는 해외에 설정한 가족신탁(Family Trust) 명의를 동원해 부동산을 매매·관리해 거액의 양도소득과 수익을 올리고 호화생활을 누리면서도 양도소득을 숨기고 해외금융계좌 신고 의무를 위반했다. 국세청은 B의 탈세 혐의를 확인하고 양도세와 해외금융계좌 미신고 과태료 각각 수십억원을 받아내는 동시에 검찰에 고발했다.
사주 C는 그룹 핵심 기업의 해외 거래처 매출을 축소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 후 경영권을 승계, 증여세를 회피했다. 이 회사는 원래 상당한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우량기업이었지만 자녀에게 지분을 양도하기 전 몇 년 동안 거액의 결손이 발생했다. 사주 자녀들은 인위적으로 저평가된 주식을 액면가 미만 금액으로 취득해 경영권을 승계했다. C 일가는 세무조사 결과 수십억원대 증여세와 법인세를 각각 추징당했다.
국세청은 세무검증 과정에서 외국 영주권·시민권으로 신분을 '세탁'하거나 복잡한 국제거래를 이용한 지능적 역외탈세 혐의자 54명을 포착하고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 대상은 ▲ 국내 납세의무가 없는 비거주자로 위장해 소득·재산을 해외에 숨긴 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보건의료서비스 등 국가의 복지와 편의만 누리는 이중국적자 14명 ▲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유한책임회사로 기업 형태를 변경한 후 소득을 해외로 부당하게 이전한 외국계 기업 6개 ▲ 복잡한 국제거래를 통해 부를 증식한 자산가 16명 ▲ 중계무역·해외투자로 위장해 소득을 해외로 이전하고 은닉한 지능적 역외탈세 혐의자 18명이다.
국세청은 "이민, 교육, 투자 등 이유로 출국했다가 코로나19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외국인이 늘어나는 가운데 납세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와 혜택만 향유하는 얌체족도 일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중국적과 국제거래를 이용한 부의 편법 증식, 국외소득 은닉 등에 집중적인 세무검증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조사 결과 탈세가 확인되면 법과 원칙에 따라 과세하고 조세포탈 혐의가 확인되면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앞서 2019년 이래 국세청은 역외탈세와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혐의에 대해 세 차례 조사를 벌여 현재까지 1조1천627억원을 추징하고 5건을 검찰에 고발하거나 통고처분(행정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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