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총격사건 후 목소리 높이는 아시아계 여성 언론인들
"성적 대상화 부추기는 언어, 보도에 쓰지 말라" 보도지침 발표
트위터·기사 통해 '아시아계 여성 인종차별' 적극적 공론화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미국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인종 차별·증오범죄가 집중조명을 받는 가운데 미국의 아시아계 언론인들이 공정한 보도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람들이 소식을 접하는 주요 채널인 기사가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더 부추기지 않는 방향으로 보도돼야 한다며 보도 지침을 내놓고, 그동안 사회적 의제의 사각에 놓여 있던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 차별을 공론장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언론인 협회'(AAJA)는 총격 사건 다음 날인 17일(현지시간) 이 사건 보도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주요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에서 탐사보도를 담당하는 니콜 덩카는 17일 트위터에 " 여러분의 이번 총격 사건 보도가 아시아·태평양계(AAPI) 공동체에 책임감 있고 공정하며 정확하도록 확실히 해달라"고 당부하며 이 지침을 공유했다.
지침은 우선 "뉴스 보도 때 아시아 여성을 과도하게 성적 대상화 하도록 부추길 수 있는 언어에 주의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인식이 폭력이나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어 구체적으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업태를 묘사할 때 성매매나 성적 대상화 같은 용어를 피하라고 권고했다. 대신 '마사지 숍'이나 '업체' 또는 고유한 점포명을 쓰라고 추천했다.
이들은 또 "맥락을 제공하라"며 이번 총격 사건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며 아시아·태평양계 공동체에 공포가 고조된 가운데 벌어졌다는 맥락 속에서 보도하라고 권유했다.
아울러 "반(反)아시아계 인종 차별주의와 보이지 않음(invisibility)을 이해하라"고 조언했다. 미국에서 아시아계 인종 차별주의는 고도로 미묘하고 복잡했으며 역사적으로 잘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아시아계 인종 차별주의에는 아시아 여성을 과도하게 성적 대상화 해온 오랜 역사도 포함된다고 짚었다.
지침은 이밖에 아시아·태평양계 전문가와의 인터뷰와 발언 인용을 통해 뉴스의 취재원을 다양화하고, 아시아·태평양계 동료 언론인에게 힘을 실어주고 지지해주라고 권고했다.
이 지침이 발표된 뒤 AAJA의 홈페이지에는 접속량이 폭주하며 한때 다운되기도 했다. AAJA 멤버이자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미셸 예 히 리는 "AAJA의 홈페이지가 다운된 것은 9년 만에 처음"이라며 "올바르게 뉴스를 보도하겠다고 결의한 언론인들에게 감사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NBC 뉴스의 기자 키미 얌은 18일 방송에 나와 "미국에는 '아시아 여성들은 성적으로 일탈적이고 순종적이며 유순하다'는 지배적인 고정관념이 있다"며 역사학자들은 법규와 정책, 제국주의 역사 등으로 이런 고정관념이 형성됐다고 지적한다고 말했다.
얌은 특히 이런 왜곡된 인식의 뿌리가 1875년 동아시아 여성이 성매매를 위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들의 입국을 금지한 '페이지 법'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는 학자들의 지적을 전했다.
CBS 뉴스의 앵커 프랜시스 왕은 소셜미디어에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여성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한 동영상을 올려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NYT) 기자인 세실리아 강은 17일 트위터에 "'모델이 되는 소수인종' (model minority) 신화를 폭발시켜야 한다"며 "'타이거 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이것 중 어느 것도 내 양육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썼다.
태평양에 있는 '마리아나 제도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터넷 매체 복스의 기자 레이철 라미레스는 16일 백인 우월주의가 미국의 흑인과 아시아계를 분열시켜왔다고 지적하는 기사를 썼다.
라미레스는 트위터에서 "(아시아계를 지칭하는) '모델이 되는 소수인종'부터 (흑인을 가리키는) '검은 범죄 행위'라는 고정관념에 이르기까지 백인 우월주의는 오랫동안 흑인과 아시아계 공동체를 분열시키려 해왔다"고 지적했다.
CNN 방송은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폭력 사건들이 예전보다 높은 수준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그 이유 중 하나로 아시아계 언론인들의 증가를 지목하기도 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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