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로 공 넘어간 사용후핵연료 문제…갈등 불가피(종합)

입력 2021-03-18 18:33
정부·국회로 공 넘어간 사용후핵연료 문제…갈등 불가피(종합)

법제화 과정서 논란 재점화할 듯…탈핵단체 "권고안 폐기" 반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윤보람 기자 =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가 18일 대정부 권고안 제시를 끝으로 21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재검토위는 이날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 등 사용후핵연료 정책 전반에 관한 권고사항을 내놓았다.

중립적 전문가들로 구성된 재검토위가 정책의 큰 원칙과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결국 공을 정부와 국회에 넘김으로써 권고안 실행 과정에서 갈등과 논란은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소영 재검토위 위원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재검토위는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구체적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세부 사항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전문가가 한 발 떨어져서 이해관계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이슈를 살펴보고,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한번 더 짚어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재검토위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를 위해 2019년 5월부터 공론화 활동을 진행했다.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는 원자로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배출된 핵연료를 말한다. 원자로에서 핵분열 과정을 거친 사용후핵원료는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방출한다.

특히 국내 원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수로형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는 특별한 조치 없이 그대로 둘 경우 천연우라늄 수준으로 방사능 독성이 낮아지려면 최대 약 30만 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말 기준으로 국내에는 총 24기의 원전(경수로 21기, 중수로 3기)이 가동 중이며 사용후핵연료 누적 저장량은 48만2천592다발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의 핵심은 사용후핵연료 다발을 보관할 부지를 선정하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시설이 기피 시설이다 보니 지역 갈등이 유발되는 첨예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1978년 고리 1호기 가동을 시작한 이후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큰 노력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이유다. 1983년부터 계속된 관리시설 부지확보 시도는 9차례나 성과 없이 끝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는 임시저장시설만 있을 뿐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 시설은 없다.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나오는데, 임시로 계속 보관할 수 없으니 국민 안전과 환경보호를 위해 영구적으로 처분할 시설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영구처분 시설을 만들려면 부지 결정부터 최종 건설까지 40년가량 걸리는 만큼, 그사이에 보관할 중간저장시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검토위도 그간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국내에 지을지, 짓는다면 한곳에 몰아서 지을지, 분산할지 등에 대해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국민 다수의 의견에 따라 동일 부지에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모두 확보하는 것을 우선하되, 중간저장시설 별도 확보 등 다른 의견이 있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한다"라는 다소 모호한 결론을 내놨다.

재검토위에 따르면 시민참여단(전국 451명, 지역 145명) 절반 이상(63.6%)은 중간저장시설과 동일 부지에 확보한 영구처분시설에 처분하는 '집중형 중간 저장·영구처분' 방식을 선호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권고안의 가장 핵심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중간저장·영구처분 시설 확보와 관련한 논의가 많이 있었다"면서 "일단 국민 의견 수렴 결과를 그대로 전달했고, 전문가 의견수렴에서는 합의가 안 됐다"고 말했다.

재검토위는 관리부지 선정 절차를 비롯해 사용후핵연료의 구체적인 정의, 의견수렴 방안 등을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가칭)을 만들어 법제화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을 전담할 별도의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도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예산도 있고 구속력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부지 선정을 비롯해 강한 실행력을 가지고 수십 년이 걸리는 영구처분 문제를 고민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검토위에 이해관계자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권고안이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재검토위를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한다며 지역 주민과 탈핵시민단체 등 시민사회의 참여를 배제했다. 그러자 시민사회계는 '기계적 중립'이 우려된다고 반발하며 전문가 추천을 거부하고 위원회 해체를 주장해왔다.

작년 6월에는 정정화 전 위원장이 "재검토위가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탈핵시민계를 포함해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구조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며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소영 위원장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지 못한 것은 부족한 점"이라고 말했다.

탈핵단체인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재검토 결과는 시작부터 과정 그리고 결과 도출까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다"며 "불공정, 엉터리 권고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 안전보다 핵산업계 이득 보전에만 급급해 맥스터 증설을 위한 들러리로 철저히 악용된 재검토위의 재공론화와 그 권고안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정부는 이번 재검토위 과정의 문제점과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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