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상이 멈췄다'…봉쇄 첫날 황량한 로마 도심(종합)
교통량 평소 3분의 1로 뚝…음식점·상점도 모두 문 닫아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다시 봉쇄령이 내려진 15일(현지시간) 도심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교통량도, 행인도 모두 평소의 3분의 1이 채 안 돼 보였다.
거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마치 여름 휴가철 같다"고 말했다.
한여름이 되면 상당수 시민이 피서를 떠나 거리가 텅 비게 되는데 이를 빗대어 한 말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2일 로마가 속한 라치오주(州)와 밀라노가 주도인 롬바르디아주 등 9개 주와 1개 자치지역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고위험지역(레드존)으로 지정했다.
레드존이 되면 건강·업무 등의 사유가 아닌 한 외출이 금지된다. 식당을 비롯한 비필수 업소는 물론 학교도 문을 닫는다.
다음 달 6일까지 3주간 시행되는 조처다.
로마시민에게 봉쇄는 그리 낯설지 않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인 지난해 3∼5월과 성탄절을 포함한 연말연시 똑같은 경험을 했다.
이 때문인지 거리에서 마주친 로마시민들의 얼굴은 한층 차분했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첫 번째 봉쇄 때처럼 당혹스러워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다만,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봄의 귀환'을 제대로 반기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크다.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을 비롯한 시내 주요 관광지는 다시 긴 수면에 들어갔다. 일부 유적지는 봉쇄의 틈을 타 곧장 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2월 바이러스 사태가 터진 뒤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하자 그 공백을 로마시민들이 메웠다.
그들은 외국인 관광객에 치여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기 도시의 보석 같은 역사·문화유산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지금까지 만난 여러 로마 사람들은 이를 매우 뜻깊고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로마시민에게도 이를 즐길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로마시민들이 만남의 장소로, 의사 표현의 장소로, 혹은 휴식의 장소로 애용하는 광장도 인적을 잃었다.
과거 로마로 들어오는 북쪽 관문이었던 포폴로 광장,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나보나 광장 등 모두 휑하고 쓸쓸한 풍경이었다.
광장에 붙은 수많은 식당도 모두 셔터를 내렸다.
테베레강 넘어 서쪽에 자리한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도 마찬가지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그 넓은 공간은 갈매기와 비둘기가 차지했다.
광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여러 대의 경찰 차량, 행인들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경관들의 모습은 지금이 봉쇄 중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통상 긴 대기 줄을 감수해야 하는 성베드로 대성당 역시 내부가 텅 빈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이탈리아 당국은 봉쇄 기간 미사는 금지하되 성당 개방은 허용했다. 종교 활동을 원하는 신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다.
하지만 집 근처 성당으로 이동을 제한해 도심의 유명 성당들에서는 인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활달하게 웃고 떠드는 학생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학교 폐쇄로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돼 모두 집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다.
현지 언론은 이번 봉쇄로 이탈리아 전체 학생의 80%가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플라미니아라는 이름의 한 학부모는 "어른과 아이 모두 힘든 시기"라고 말했다.
또다시 찾아온 장기간의 봉쇄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봉쇄 기간 영업이 허가된 상점들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영업을 하면 오히려 적자라며 일부러 문을 닫은 상점도 있고,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한 상점도 많다. 이런 곳은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해 장기간 비어있기 일쑤다.
트레비 분수를 마주 보는 한 잡화점의 텅 빈 진열대 앞 쇼윈도에는 '감사합니다. 총리'(Grazie, Presidente)라고 쓰인 종이가 나붙었다.
영업은 못 하게 하고 그렇다고 지원도 시원치 않은 정부를 원망하는 반어적 표현이다.
이탈리아의 자영업자 비중은 22.9%로 우리나라(25.1%)보다는 작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8번째이며, 선진국 중에서는 가장 높은 축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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