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핵미사일 비밀 기지 건설이 드러낸 그린란드 과거와 미래
과거 100만년 사이 한 차례 이상 얼음 전체 또는 대부분 녹아
미래 기후변화 취약 입증…얼음 모두 녹으면 해수면 6m 상승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북극해 인근 그린란드를 덮고 있는 얼음이 지난 100만 년 사이에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완전히 또는 거의 대부분이 녹은 적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세계 최대의 섬인 그린란드의 85%를 덮은 얼음이 지금까지 여겨지던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녹아 수많은 도시를 바닷물에 잠기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린란드의 얼음은 해수면을 약 6m 상승시킬 수 있다.
특히 이런 결과는 미군이 1960년대에 옛 소련을 겨냥해 그린란드 빙하 밑에 비밀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채취된 뒤 수십 년간 방치되다 존재가 확인된 얼음 코어 시료를 통해 드러난 점도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린란드 1.38㎞ 얼음 밑에서 발견된 식물 흔적
미국 버몬트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지리학과의 드루 크라이스트 박사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그린란드 북서부 북극권 안의 미군기지 '캠프 센추리'의 1.38㎞ 빙상 아래 퇴적물 시료를 분석한 결과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최신호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현미경을 통해 이 퇴적물 시료에서 잔가지와 잎 등을 찾아냈다.
크라이스트 박사는 "빙상은 움직이는 경로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루를 내고 파괴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것은 섬세한 식물 구조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다"면서 "그린란드에서 과거에 어떤 것이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타임캡슐"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얼음에 덮이지 않고 표면에 노출돼 우주선(線)을 받을 때만 형성되는 암석 내 베릴륨과 알루미늄 동위원소의 비율을 측정하고, 침전물 내 얼음에서 발견되는 산소의 형태를 통해 빙상으로 덮여있었는지 등도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 100만 년 사이에 그린란드 전체는 아니라도 대부분이 적어도 한 차례 이상 녹아 이끼로 덮이거나 더 나아가 전나무까지 자라는 녹색지대를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그린란드의 얼음은 지난 260만 년간 간빙기로 불리는 기온 상승기에도 유지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는 연안 시추나 해안가로 밀려온 암석과 진흙 등 간접적 증거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캠프 센추리 시료는 해안에서 섬 안쪽으로 120㎞, 북극에서는 약 1천280㎞ 떨어진 곳에서 채취한 것으로, 1990년대에 그린란드 중앙의 두 곳에서 채취한 얼음 코어의 분석 자료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린란드가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것보다 기후변화에 더 취약하고 민감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강력한 증거로, 그린란드의 얼음이 현재 인간이 유발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같은 기온 상승기에 완전히 녹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지적됐다.
◇ 실패한 핵미사일 비밀 기지와 극적으로 다시 등장한 시료
이번 연구에 이용된 시료는 미군이 1960년대 초에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빙상 밑에 캠프 센추리를 건설할 때 과학자들이 채취한 것이다.
미군은 캠프 센추리를 '얼음 밑 도시'라고 부르며 과학기지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프로젝트 아이스웜'(Iceworm)이라는 이름으로 총연장 3천㎞가 넘는 21개의 터널을 뚫어 옛 소련 코앞에 600기의 핵미사일을 숨겨두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빙상이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터널의 형태가 뒤틀리고 눈의 무게로 붕괴 위험까지 제기되면서 얼음 밑 기지건설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과학자들은 캠프 센추리에서 1.38㎞까지 시추해 얼음 코어를 확보했지만, 빙상의 역사를 담은 얼음 시료에만 초점을 맞추고 약 3.6m를 더 파고들며 채집한 빙상 밑 퇴적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퇴적물 시료는 결국 미국 육군연구소 냉동 저장실에서 버펄로대학을 거쳐 1990년대에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냉동 저장실로 옮겨졌지만, 구석에 처박힌 채 잊혔다. 그러다 지난 2017년 새 냉동 저장실로 얼음 코어 시료를 옮기기 위해 정리하는 과정에서 '캠프 센추리 얼음 밑 시료'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 우연히 발견돼 빛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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