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선거제 개편 주안점은…중국 직접 통제 '구멍 메우기'

입력 2021-03-11 17:46
홍콩 선거제 개편 주안점은…중국 직접 통제 '구멍 메우기'

공직선거 출마자격 심의위원회 설치…행정장관 선거인단 내 선출직 몫 축소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야권 "일국양제 종말·민주주의 고사 위기"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의결한 홍콩 선거제 개편안의 핵심은 공직 선거 출마 자격을 당국이 심사하고, 행정장관 선거인단에 시민이 선출하는 몫을 줄이는 것에 맞춰졌다.

홍콩 정가에 대중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부분은 축소되고 중국의 직접 통제는 강화되는 모양새다.

이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홍콩 행정장관·입법회(홍콩 의회) 의원 선거와 관련된 부분인 홍콩 기본법의 부속서 1과 2를 개정하고 홍콩 당국이 관련법을 고치는 절차가 남았다. 모두 일사천리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홍콩보안법도 같은 절차를 밟아 한달 만에 속전속결 처리돼 6월 30일 시행됐다.

이 과정에서 홍콩 내 여론 수렴이나 입법회 토론 등의 과정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법안의 구체적 내용조차 홍콩 시민에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다.

홍콩 야권은 선거제 개편으로 친중 인사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된다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종말을 고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홍콩의 민주주의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른 4인 초과 집합금지 명령과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물리적으로 표출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 '홍콩 통제 구멍 메우기' 작업…'애국심' 심사해 출마시켜

이번 선거제 개편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구멍'(loophole)이다.

홍콩 내 친중 인사, 중국 본토 인사 가릴 것 없이 홍콩 선거제의 '구멍을 메워야한다'고 강조했다.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는 원칙이 철저히 이행될 수 있도록 '비애국자'의 정치권 입성을 차단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이날 전인대에서 의결된 선거제 개편안에는 공직 선거 출마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고위급 심의위원회 설치, 행정장관 선거인단 1천500명으로 확대, 입법회 의원 90명으로 확대가 포함됐다.

선거인단에서는 기존 구의원 몫 117석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시민이 선출한 몫이 선거인단에서 빠진 것이다.

입법회 의원은 선출직, 직능대표 선거, 선거인단 선거 등 세 가지 방식으로 뽑는다고 밝혔지만 각각 몇석씩 배분할 것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홍콩 언론은 선출직 수가 현재의 35석에서 20석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입법회 의원도 전원 선거인단에 참여한다.

홍콩 명보에 따르면 홍콩 행정장관의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버나드 찬(陳智思) 의장은 전날 베이징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과 일국양제 원칙에 맞게 선거제가 개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의위원회에서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고 정치인이 취임한 후에는 그의 행동이 충성서약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내년 3월 행정장관 선거…"올해 안에 선거인단·입법회 선거"

홍콩 선거제 개편의 최종 목표는 내년 3월로 예정된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일체의 잡음없이 치르는 데 있다.

그간 홍콩 언론은 중국이 미는 후보가 행정장관 선거에서 무난히 압승을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중국 당국이 홍콩 선거제 개편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행정장관 선거인단에서 반대파가 설 자리가 없도록 선거인단 수와 구성을 변경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찬 의장은 "올해 안에 행정장관 선거인단과 입법회 선거가 치러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선거제 개편안이 전인대 상임위를 통과하고 홍콩에서 관련법 수정 절차를 거친 후 선거를 치르려면 일정이 매우 촉박하다"면서도 "입법회 선거가 이미 1년 연기됐기 때문에 또다시 내년으로 연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콩은 지난해 9월 6일 입법회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한달 전 1년 연기를 전격 발표했다.

당시는 범민주진영이 2019년 11월 구의회 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후 입법회에서도 과반의석을 차지하겠다며 바람몰이를 하던 중이었다.

이에 야권에서는 입법회 선거 연기가 범민주진영의 기세를 꺾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했다.





◇ "친중 세력도 못 믿어…중국이 직접 제도 개편"

이번 선거제 개편 과정에서 중국은 홍콩 내 친중 세력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8일 렁춘잉(梁振英) 전 행정장관, 레지나 입(葉劉淑儀) 신민당 주석 등 홍콩 내 대표적 친중파들이 이번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중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의견을 물어오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FT는 2019 반정부 시위 사태 이후 중국 정부가 홍콩 내 친중 세력에도 불만을 품기 시작했으며, 이번 선거제 개편에서 홍콩 내 중국본토 관리들의 의견만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레지나 입 주석은 지난 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의 선거제 개편 의견 수렴 과정에 참여했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늘 해왔던 대로 사적(privately)으로 의견을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에 밝혔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에밀리 라우(劉慧卿) 민주당 국제위원장은 "이번 선거제 개편에서 야권은 물론이고 친중 인사들도 배제됐다"며 "중국이 중국 인사들의 의견만 듣고 홍콩 선거제를 개편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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