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백인과 흑인의 중간지대를 가다
프리토리아 이어스터러스트 탐방…흑백 혼혈 '컬러드' 구역, 아파르트헤이트 산물
(프리토리아=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남아프리카공화국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 있는 백인과 흑인의 중간지대를 다녀왔다.
프리토리아 도심에서 동쪽으로 15㎞ 지점인 이어스터러스트(Eersterust) 지역은 흑인 집단 주거지 마멜로디에 바로 붙어 있다.
이곳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 정책)의 산물로, 백인과 흑인 사이 혼혈인 이른바 '컬러드'(Colored) 인구가 많이 사는 곳이다. 컬러드는 남아공 전체 인구의 8.8%다.
마멜로디 타운십 앞을 지나가는데 흑인 일색이다.
이어스터러스트는 주로 단층집들이긴 하지만 흑인 타운십에 비해 깨끗하게 단장한 편이다.
이곳에 살며 빈민 구호 사역을 하는 제이(45) 목사의 안내로 여기저기 둘러봤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제이 목사는 자신도 컬러드라고 말했다. 피부색이 흑인보다 옅었다.
그는 "아버지는 이스턴케이프주의 코사족 출신이고 어머니는 나미비아 출신으로 네덜란드와 독일계"라고 말했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인 1980년 당시 자신이 네 살이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다른 인종인 관계로 케이프타운 외곽의 같은 집에 가족이 함께 살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두 형제는 자기보다 흑인 피부에 가깝다고도 했다.
같은 컬러드라도 백인 정권은 피부색이 백인에 가까우면 사무직 등에 배치하고 흑인 쪽이면 정원사 등 잡무를 시켰다고 한다.
피부색 외에도 중요한 고용 기준은 백인 토착어인 아프리칸스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컬러드의 대부분은 아프리칸스어를 말할 수 있다.
당시 웨스턴케이프 주거지는 백인 주거지와 흑인 주거지 사이에 혼혈인 구역이 있는 식으로 도시구획이 인종별로 정해져 있었다.
이곳 이어스터러스트도 원래 컬러드 구역이었지만 지금은 흑인들도 다수 살고 짐바브웨, 말라위 등 4개국 이민자도 정착해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주민 수는 8만5천 명으로 추산된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리버사이드라는 흑인 아파트 지구였다.
4층짜리 아파트에 빨래와 DS 위성TV 안테나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16가구가 한 블록을 형성하는데 이런 블록이 20개나 된다.
이곳에 사는 노인은 정부에서 주는 연금을 받고 아동도 학교에서 식량 지원을 받는다. 시에서 전기와 물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한다.
한 아파트 가구는 통상 두 개의 침실로 이뤄지는데 보통 할아버지, 할머니에서 손주까지 3대가 같이 12∼15명씩 모여 산다.
사실상 사회적 거리 두기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이고 3개월에 한 번씩 이동 소독 차량이 온다고 한다.
인근 유치원은 6개월∼5세 영유아들이 있었는데 직장 퇴근 시각이 가까운 오후 5시 전에도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제이 목사는 "유치원에 저녁까지 남아있는 유아들도 있다"면서 "이 주변에서 슈퍼마켓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음식과 수프, 유아용 유동식 등을 나눠준다"고 말했다.
흑인 아파트 단지의 실업률은 70%로 공식 실업률의 2배 이상이다. 12 식구 중 한 명 정도만 일터에 나가고 나머지는 사회적 보조금에 의존한다.
다닥다닥 붙은 접시 안테나에 관해 물으니 원래 가구당 100랜드(약 7천380원)씩 내는 것인데 한 집에서 다 내기 부담스러워서 대표로 신청한다고 한다. 이어 다른 가구들에서 십시일반 10랜드 정도씩 모아서 돈을 낸 다음 선을 가구마다 연결해 TV를 시청한다고 한다.
거리에는 세 바퀴 미니택시인 '턱턱'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타운이나 일하러 가는데 많이 이용하며 주로 이곳 안에서만 돌아다닐 수 있고 바깥 시내에서 직접 운행할 수는 없다.
비용도 10랜드로 저렴한 편이다.
장소를 옮겨 공동묘지 옆쪽 마약 판매소로 알려진 곳과 주류 판매점이 있는 곳으로 가봤다.
젊은 층이 많이 보였는데 특히 밤에는 마약과 갱들의 싸움으로 위험하다고 했다.
경찰도 있지만, 뒷돈을 받고 단속 정보를 흘리며 봐준다고 한다.
지난해 록다운(봉쇄령) 때 주류 판매를 금지했을 당시에도 이곳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고 한다.
먹고 살기 힘든 데 술마저 못 팔게 하면 어떻게 하냐면서 말이다.
비공식 경제의 현장으로 좌판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는데 마약도 그냥 길거리에서 판다고도 했다.
마약 판매소 두 곳과 주류 판매점 근처에 사는 블레이크 씨는 공군으로 가난과 마약에 찌든 이곳에서 '유니폼'을 입는 사람으로 존경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록다운 때 정부의 실업 보조금이 이곳 주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면서 "하지만 여기 노는 아이들을 보면 알 듯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믿지 않아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동네 개념이라 그런지 마스크를 쓴 사람은 정말 듬성듬성 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집마다 가계 형편상 비싼 전기 펜스를 두를 수 없어 맹견을 키우는 집이 많다는 것이다.
또 재미있게도 메인 스트리트를 가보니 교회가 10개 집중적으로 가로변으로 모여 있었다. 한 학교 안에는 교회 다섯 곳이 들어서서 교실을 이용한다고도 했다.
산 아래쪽에는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컬러드 출신 전문직들이 여럿 산다고 했다.
직접 가보니 이곳은 집들도 크고 거리도 훨씬 차분했다.
제이 목사는 "이들은 교육의 힘을 믿고 자녀 교육에도 힘쓰는 반면 요즘 젊은이들은 돈을 빨리 버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직들은 치안 불안으로 인근 시내로 나가 산다고도 했다.
70만 명이 넘는 프리토리아 시민은 과거 백인 일색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거꾸로 80%가 흑인이다
1994년 흑인 민주화 정권이 들어서고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이후 도시 인구 구성도 변화하고 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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