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ITC "SK, LG 영업비밀 침해 명백"…SK "검증 안돼"(종합)

입력 2021-03-05 09:37
수정 2021-03-05 16:29
美ITC "SK, LG 영업비밀 침해 명백"…SK "검증 안돼"(종합)

SK이노베이션 패소 최종 의견서 공개…영업비밀 22개 침해 확정

SK "LG 영업비밀 필요 없어…미 대통령 거부권 강력 요청"

(서울=연합뉴스) 김영신 기자 =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5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096770]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건 최종 의견서를 통해 SK가 LG의 영업비밀을 명백히 침해했다고 명시했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없이는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데 10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해 미국 수입금지 조치 기간을 10년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ITC가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며 영업비밀 침해에 불복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최종 의견서에 따르면 ITC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한 패소 예비 결정(조기패소)을 확정하고 수입금지·영업비밀 침해 중지 명령을 내린 데 대해 "SK의 증거인멸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며 "증거 인멸은 고위층이 지시해 조직장들에 의해 전사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ITC는 예비 결정 때부터 지적된 SK의 자료 삭제에 대해 "자료 수집·파기가 SK에서 만연하고 있었고 묵인됐음을 확인한다"며 "SK가 정기적인 관행이라는 변명으로 노골적으로 악의를 갖고 문서 삭제·은폐 시도를 했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입증을 바탕으로 LG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11개 카테고리·22개 영업비밀을 그대로 인정했다. 전체 공정, 원자재부품명세서, 각종 제조 공정 등에 대한 영업비밀들이다.



이에 따라 LG가 주장한 22개 영업비밀을 법적 구제 명령 대상으로 판단했고, 미국 수입 금지 기간 역시 LG의 주장에 동의해 10년으로 정했다고 ITC는 밝혔다.

SK는 수입금지 기간을 1년으로 주장하고, ITC 산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은 최소 5년을 제시했지만, ITC는 "SK가 영업비밀을 침해해 10년을 유리하게 출발했다"는 LG의 주장을 인정했다.

ITC는 "SK는 침해한 LG의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해당 정보를 10년 이내에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침해 기술을 10년 이내에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나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ITC는 양사 분쟁의 결정적 계기가 된 2018년 9월∼10월 폴크스바겐(폭스바겐) 수주에 대해서도 최종 의견서에 언급했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사업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LG에너지솔루션의 경쟁 가격정보를 취득해 폭스바겐에 자사 배터리를 가장 저가에 제안, 수주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LG 영업비밀을 침해해서 만들어진 더 저렴한 SK 배터리에 대한 폭스바겐의 선호는 공공의 이익 면에서 설득력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ITC는 포드에 4년, 폭스바겐에 2년 각각 수입금지 유예기간을 내린 데 대해서는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은 다른 배터리 공급사로 갈아탈 시간적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ITC는 SK의 영업비밀 침해 사실에도 불구하고 SK와 장래 사업 관계를 계속 구축하기로 선택한 포드 등 상대 완성차 업체에도 잘못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ITC가 LG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에 대해 실체적 검증을 한 적이 없다"면서 "(문서 삭제 등) 절차적 흠결을 근거로 내린 결정이 여러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1982년부터 배터리 기술 개발을 시작해 2011년 이미 공급 계약을 맺었고, LG와는 배터리 개발·제조 방식이 다르다면서 "LG의 영업비밀이 전혀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ITC가 영업비밀 침해라고 결정하면서 여전히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됐다는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며 "ITC 의견서 어디에도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침해당한 영업비밀을 특정하라는 ITC 요구에 따라 LG가 당초 범위를 너무 방대하게 제시했다가 ITC가 영업비밀 침해를 규명하기 어렵다고 보자, LG가 다시 22개로 축약했다고 SK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ITC가 22건을 지정하면서도 개별 수입 물품이 실제 수입금지 대상에 해당할지는 별도 승인을 받도록 명함으로써 그 범위가 모호하다고 스스로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또한 포드와 폭스바겐이 수입금지 유예기간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라면서, ITC의 결정이 공익 영향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은 "ITC의 모호한 결정이 미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심각한 경제적·환경적 해악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같은 문제점을 대통령 검토 절차에서 적극적으로 소명해 거부권 행사를 강력히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증거 인멸 인정에 대해서는 일부 팀에서만 판단 착오로 벌어진 문서 삭제를 LG 측이 전사적·악의적 증거 인멸이 있는 것처럼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했다.

미국 행정부는 지난달 10일 나온 ITC 최종 결정에 대해 리뷰를 진행 중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종 결정 후 60일 이내에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SK이노베이션은 거부권 행사를, LG에너지솔루션은 ITC 결정을 번복하지 말 것을 각각 요청하고 있다. 현재 합의와 관련해서 진전은 없다고 양사는 밝혔다.

이날 ITC 최종 의견서 공개에도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공방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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