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전쟁범죄' 조사 개시(종합)

입력 2021-03-04 02:20
국제형사재판소,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전쟁범죄' 조사 개시(종합)

ICC, 팔레스타인 영토 사법관할권 인정 후속 조처

팔레스타인 "정의 위한 조치" 환영…이스라엘 "반유대적 위선" 강력 반발

(베를린·카이로=연합뉴스) 이 율 김상훈 특파원 = 국제형사재판소(ICC)가 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영토 내 전쟁범죄에 대해 공식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5일 ICC가 요르단강 서안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사법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후속 조처다.



파투 벤수다 ICC 검사장은 이날 성명에서 "5년여간 공들여 예비조사를 한 끝에 조사를 개시하기로 했다"며 "오랜 폭력과 불안의 악순환에 깊은 고통과 절망에 시달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의 희생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원칙에 따라 공평한 접근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벤수다 검사장은 앞서 2019년 12월 전쟁범죄는 이스라엘이 장악하거나 사실상 장악한 지역인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역 등에서 저질러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모두가 기소 가능한 가해자 범주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앞서 ICC는 지난달 5일 팔레스타인이 로마 규정(Rome Statute)에 부합하는 '당사국'(state party) 지위를 갖고 있어 사법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ICC 설립을 위한 국제연합 외교 회의가 1998년 로마에서 채택한 로마 규정은 ICC 재판 회부를 위한 관할권 요건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규정에 따라 당사국이 범죄 행위를 소추관(검사)에 회부하거나, 소추관이 범죄에 대한 수사를 개시한 경우 ICC의 관할권이 인정된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점령한 곳이다.

2014년 7∼8월 진행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이른바 '50일 전쟁')에서는 무려 2천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또 지난 2018년 3월 가자지구 분리 장벽 근처에서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을 규탄하는 시위가 시작된 뒤 팔레스타인인 300여 명이 이스라엘군에 피살됐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살해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질러왔다며 ICC의 조사를 요청해왔다.



팔레스타인 측은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외무부는 성명에서 "평화에 필요한 정의와 책임 구현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열띤 노력에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논평했다.

외무부는 이어 "점령자 지도부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이며 광범위했다"고 덧붙였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도 ICC의 조사 개시를 즉각 환영했다.

하젬 카셈 하마스 대변인은 "우리를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점령 전쟁 범죄를 조사하겠다는 ICC의 결정을 환영한다. 우리의 희생에 대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길"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조사 대상이 된 이스라엘은 강력히 반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영상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ICC 검사장의 전쟁범죄 조사를 "반유대적 성격의 위선"이라고 비판하고 "수치스러운 결정이 취소될 때까지 진실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가비 아슈케나지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이를 "도덕적, 법적 파탄"이라며 "ICC의 법적인 박해로부터 자국민과 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ICC의 전쟁범죄 조사가 시작될 경우 팔레스타인과 전쟁에 관여한 정부 및 군 고위인사 수백 명이 기소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이 국외 여행을 갔다가 체포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관련자들에게 ICC 조사 상황 등을 공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을 포함한 수백 명이 조사 선상에 오를 수 있다면서 "나는 적진으로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를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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