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강제 불임수술' 재판 시작
산아제한 명목으로 원주민 여성 등 30만명 강제 수술 혐의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페루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82) 전 대통령 시절 산아 제한을 명목으로 자행된 강제 불임수술과 관련한 재판이 시작됐다.
2일(현지시간) 페루 일간 엘코메르시오와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개시된 공판에서 검찰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 당시 보건장관 3명 등 피고인 6명이 강제 불임술로 생명과 건강, 인권 등에 큰 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검찰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진행된 불임수술 탓에 5명이 숨지고, 1천300여 명이 심각하게 다쳤다고 밝혔다.
1990∼2000년 집권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이미 재임 중 저지른 반인륜 범죄로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가 강제 불임수술과 관련해 추가로 기소된 것은 2018년이었다.
후지모리 정권은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산아 제한 정책을 폈다. 후지모리는 이 같은 정책 덕에 페루의 출산율이 1990년 3.7명에서 10년 만에 2.7명으로 줄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팔관을 묶는 불임수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엘코메르시오에 따르면 후지모리 집권 후반인 1996∼2000년 사이 30만 명 이상의 여성이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안데스 산악 지역이나 아마존 밀림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원주민 여성들이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1997년 아기 예방접종을 위해 보건소를 찾았다가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았다는 한 피해 여성의 증언을 전하기도 했다.
여성들이 수술 도중 감염으로 숨지는 경우도 생겼다.
이에 대해 후지모리 전 정권 측은 수술은 모두 동의 하에 진행됐다고 주장하며, 강제 수술 의혹에 대해선 지나치게 열성적인 일부 지방 보건당국의 탓으로 돌린 바 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이날 공판엔 출석하지 않았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그의 변호사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2007년 칠레에서 송환될 당시 제기된 혐의 중엔 강제 불임수술 관련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사건으로 재판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일본계인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건강상태를 고려한 '인도적 이유'로 사면됐다가 이듬해 대법원의 사면 취소 결정으로 재수감됐다.
오는 4월 대선에 출마한 장녀 케이코 후지모리 민중권력당 대표는 당선되면 아버지를 사면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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