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절벽에 인구학자 조영태 "젊은층의 생존 본능 아닐까요"

입력 2021-02-26 05:31
수정 2021-02-26 08:23
출산 절벽에 인구학자 조영태 "젊은층의 생존 본능 아닐까요"

"획일화된 극도의 경쟁 유발 사회가 초저출산을 불렀죠"

"정책으로 뭘 할 수 있는 단계 지나고 문화처럼 고착한 것 같아요"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 작년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의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대한민국이 인구재앙 고속도로에 올라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에서 출생아는 27만2천400명, 사망자는 30만5천100명으로 인구가 3만3천명 자연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전년의 0.94명보다 뚝 떨어졌다. 2018년(0.98명) 0명대로 내려앉은 뒤 하락 속도가 가팔라졌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으로 평균(1.63명)의 반절에 불과하다.

인구가 현 수준을 유지하려면 평균 2.1명의 자녀를 두어야 한다. 현재의 출산율 하락 추세가 지속할 경우 향후 100년 후에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젊은이들은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한다. 치솟는 집값, 취업난, 허리가 휘는 교육 비용, 속 터지는 보육환경, 독박육아 등 목록은 끝이 없다. 인구 감소가 몰고 올 파멸적 사태는 '정해진 미래'로 보인다.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초저출산의 원인과 정책 대안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나라 인구학의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조 교수는 지난해 진화학자이자 생철학자인 장대익 교수(서울대)와 공동 기획하여 심리학자, 역사학자, 동물학자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출산율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통시적, 탈공간적으로 다룬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이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작년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떨어지고, 합계출산률은 0.84명으로 낮아졌는데요.

==이미 예견됐던 일이긴 하지만 출생아가 10% 3만300명이나 감소했다는 것은 좀 충격적이네요. 작년 출생아 중 대부분은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닌데요. 이젠 정책으로 뭐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나고 저출산이 문화처럼 고착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렇게 출산율이 급하게 떨어지는 걸까요

==환경적,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생존 본능이 극대화된 결과라고 봅니다. 인구학자인 맬서스의 이론을 토대로 보면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인구가 증가하면 경쟁은 치열해지고, 생존 본능이 아이를 낳으려는 재생산 본능보다 앞서게 됩니다. 본인이 생존해야 재생산도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요. 이는 동서고금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지만 지금의 우리나라에 절실한 것 같습니다.

인구와 경제력의 서울과 수도권의 편중은 청년들이 느끼는 물리적인 밀도를 높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획일적인 성공의 가치, 한정된 좋은 일자리, 제 나이에 학교 가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사회 규범 등은 청년들의 심리적 밀도도 높여 극도의 경쟁심을 유발하였고요. 대부분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유독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상은 밀도 높은 사회에 청년들이 적응하는 과정이고, 그게 결국 이전 세대와는 다른 사회적 진화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사회가 강요한 과도한 경쟁이 젊은이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는 거군요.

==우리나라 고등학생 중 대부분은 서울이나 수도권의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고 있죠.

지향점이 이처럼 좁고, 획일화되어있다면 경쟁심은 더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또래와의 경쟁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질수록 위아래 세대와 경쟁도 해야합니다.

▲과거 정부는 노동력, 생산력, 세금이나 연금 부담 등 경제적 관점에서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고 대책을 세워왔는데요.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출산율 제고를 국가의 유지라는 기능적 측면에서 볼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의 개인적 삶 또한 중시하기 때문에 괴리가 있습니다.

▲역대 정부가 지난 15년간 출산 정책에 2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은 역주행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처음 저출산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낳게 만들겠다는 권위적 접근이 아니라 수도권으로의 청년 집중 등 인구 변동에 대한 탐구를 심각하게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먼저 고민했어야 했는데 해외 사례를 적용하다 보니 인구 정책에 성공한 프랑스나 스웨덴이 눈에 들어왔을 테고, 그 나라들을 살펴보니 복지가 답이다 하여 복지에 먼저 초점이 맞춰진 경향이 있습니다.

복지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늘려 갈 수 있기에 그 자체는 잘한 일이지만, 출산율에는 별 효과가 없었어요.

처음부터 수도권 편중 문제 해소에 발 벗고 나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서울에 대항할 정도의 대도시를 2개 정도만 확실하게 전략적으로 육성했다면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을 겁니다.



▲세종시로 정부 부처를 대부분 옮기고, 혁신도시를 만들어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이전하는 등 나름 정부도 애를 쓴 것 아닌가요.

==그것 자체는 바른 방향이었습니다. 다만, 거점 도시를 육성한 것이 아니라 너무 이곳저곳 사람과 자원을 분산시켜 놓다 보니 서울과 대적할만한 도시가 되기엔 힘들어진 것이지요.

교육시스템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중고교, 대학 교육은 60년이 넘는 제도로 생명력이 다했습니다. 학생들을 주로 한 공간에서만 가르치고, 시험 치고,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교육이 학생들의 삶과 직업, 성공에 대한 가치관도 획일화시키고, 이게 결국 격한 경쟁심을 유발하도록 부추긴 겁니다.

▲어차피 단기간에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면 국가 경제력 유지를 위해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데요.

==이민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조업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외국인을 원할 수도 있겠습니다.

국가적으로 봐서는 생산성이 높은 고급 인력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런 인재가 있다면 여러모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우리나라보다는 다른 나라를 택할 가능성도 큽니다. 지금 우리 인재도 잡지 못하는 상황인데요.

조금 더 현실적 정책은 지금 중년 이상 된 사람들을 정년 연장, 노동의 유연화, 재교육 등을 통해 노동 시장에 더 오래 머물러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청년들이 미래에 짊어지게 될 짐을 최대한 덜어야 합니다. '너희들이 세금을 내서 우리를 떠받치라'는 게 아니라 '우리 인생은 우리가 벌어서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너희 삶이나 신경 써라'라고 해야 합니다.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베이비부머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인구구조에서 젊은 층이 나중에 노년 세대를 부양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kim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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