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태평양 전쟁 중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 또 정식 사죄
'한일 과거사 충분히 사죄했다' 입장 고수 현 일본 정부와 대비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이 싸웠던 태평양전쟁의 와중에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했던 것에 대해 "이런 정책으로 고통당한 분들에 대한 연방정부의 공식 사죄를 재확인한다"며 정식으로 거듭 사죄했다.
21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9일(미국 현지시간)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에서 일본계 주민을 강제 수용한 근거가 됐던 대통령령 서명 79주년을 맞아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성명에서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한 시대에 조상(부모)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인도적인 수용소에 감금당했다"며 이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이민 배척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988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미정부가 '시민의 자유법'(강제수용보상법)을 만들어 강제수용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식 사죄한 것을 다시 확인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공격해 발발한 태평양전쟁 때인 1942년 2월 19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을 근거로 일본계 미국인을 '적성외국인'으로 간주해 재판 등의 절차 없이 약 12만 명을 수년간 강제수용했다.
전쟁이 끝난 뒤 피해자들이 중심이 되어 벌인 명예 회복 운동이 결실을 보아 1988년 마침내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잘못 인정과 사죄를 반복한 이번 성명에서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한 시대였다"고 강제수용 역사를 되돌아보고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강제수용했던 정책은 "부도덕하고 위헌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명예 회복 운동을 이끌었던 고(故) 프레드 고레마쓰 씨를 거명한 뒤 "이런 가증스러운 정책에 반대해 일어섰던 많은 일본계 미국인의 용기를 찬양한다"며 인권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에선 매년 '기억의 날'로 불리는 2월 19일을 맞아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기념행사가 온라인으로 개최됐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의 과거사에 대한 반복 사죄는 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이미 사죄할 만큼 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현 일본 정부의 태도와 대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해 위안소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는 등 한일 과거사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사죄의 뜻을 표명하긴 했다.
그러나 2012년 12월 출범해 7년 8개월여간 장기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충분히 사죄했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작년 9월 아베 내각을 계승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현 내각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퇴임 후인 작년 10월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본인 재임 중 내놓았던 전후 70년 담화(2015년 8월)에서 "그 전쟁(태평양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들의 자식이나 손자, 그리고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을 거론하면서 "그것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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