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디즈니 배우 하차 논란과 미국의 분열상

입력 2021-02-21 07:07
[특파원 시선] 디즈니 배우 하차 논란과 미국의 분열상

드라마 '만달로리안' 배우 지나 카라노, SNS에 글 올렸다가 퇴출

'트럼프 지지자=나치하 유대인' 연상 글…팬들도 둘로 나뉘어 논쟁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미국의 정치적 분열은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퇴행적 포퓰리즘과 진보주의 특유의 타협 없는 선명함은 미국의 이념 지형을 양극단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전 세계 영화산업을 이끄는 할리우드도 예외는 아니다.

할리우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진보주의를 지지해왔고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을 지지하거나 보수적 색채가 강한 배우들도 분명히 존재하며 이들이 정치적 의견을 드러낼 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디즈니의 인기 드라마 '만달로리안'에 출연했던 여배우의 하차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대표적인 사례다.

'만달로리안'은 미국인이 현대적 신화로 떠받드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핀오프 드라마다. 요즘 미국 아이들이 열광하는 '베이비 요다'도 이 드라마에 등장한다.

작년 11월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에 탑승했던 우주비행사들이 '베이비 요다' 인형과 함께 우주 정거장으로 향했던 것에 비춰보면 이 드라마의 대중적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만달로리안'은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시즌 2까지 방영되며 순항을 해왔는데, 최근 뜻밖의 일로 팬이 둘로 나뉘었다.

이 드라마에서 현상금 사냥꾼 '카라 듄' 역할을 맡은 지나 카라노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분열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카라노는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사건인 홀로코스트에 빗대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은유하는 다른 사람의 게시물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 게시물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나치 정권하 유대인처럼 진보주의자들로부터 부당한 박해를 받고 있다는 해석을 담고 있었다.

당연히 이 게시물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큰 반발을 샀다. 부적절하고 왜곡된 비유라는 지적과 함께 반유대주의 정서를 담았다는 매서운 비판이 쏟아졌다.

더구나 카라노는 이전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조롱하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사기 음모론에 동조하는 글을 올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단단히 찍혀 있던 터였다.



'만달로리안'을 제작한 디즈니 계열사 루카스 필름은 '카라노를 퇴출하라'는 인터넷 청원 운동에 직면하자 "카라노의 게시물은 끔찍하고 용납할 수 없다"며 그를 드라마에서 하차시켰다.

카라노의 소속사도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팬들이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카라노와 함께한다'는 해시태그를 달고 카라노를 드라마에 다시 복귀시키라는 운동을 벌였다.

또한 "할리우드가 보수주의자에게만 이중잣대를 적용해 몰아내고 있다", "카라노 하차는 할리우드의 블랙리스트"라고 반발했다.

'만달로리안'을 방영하는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지 말자는 운동도 벌어졌다.

하지만, 루카스 필름은 입장 번복은 없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고, 하차 이후 침묵을 지키던 카라노도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카라노는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을 "전체주의 폭도"라고 비판했고 "디즈니에서 괴롭힘을 당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만달로리안'의 인기 캐릭터 '베이비 요다'는 치유의 힘을 가진 '포스'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하지만, 카라노 하차 사태가 확인시켜준 미국의 현실은 할리우드 연예계까지 깃든 미국의 분열상이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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