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에 체코군단이 무기 댄 배경?…"미 특사 접촉제안서 비롯"

입력 2021-02-19 09:00
독립군에 체코군단이 무기 댄 배경?…"미 특사 접촉제안서 비롯"

체코 전 주한대사 '체코와의 숨겨진 오랜 인연, 150년 교류사' 발간

(베를린=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우리 독립군의 항일투쟁에 체코군단으로부터 공급받은 무기는 큰 힘이 됐다.

이 무기는 봉오동 전투(1920년 6월)와 청산리 전투(1920년 10월)를 승리로 이끄는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체코군단이 한국 독립군에게 무기를 대게 된 배경에는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특사와 여운형 등 한국 독립운동가들과의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한 체코대사를 지낸 야로슬라브 올샤가 주체코 한국대사관의 후원을 받아 19일(현지시간) 발간한 사진집 '체코와의 숨겨진 오랜 인연, 150년의 교류사'에 따르면 여운형 등 독립운동가들은 1918년 11월 상하이로 파견된 윌슨 대통령의 특사 찰스 크레인을 만나 일본의 식민통치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서한을 건넸다.

크레인 특사는 윌슨 대통령 앞으로 된 서한을 건네받을 때 여운형 등에게 체코슬로바키아 군단과 접촉해 볼 것을 제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올샤 전 대사는 밝혔다.

재계 거물이기도 했던 크레인은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였다. 가리크 대통령은 체코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1918년 10월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에 힘입어 신생 독립국 체코슬로바키아를 이끌게 됐고, 크레인에게 여운형 등과의 면담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몇 주 후인 1919년 1월 말 여운형은 체코군단이 주둔했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고, 군단 지휘관 라돌라 가이다 장군을 만나 신뢰를 쌓았다. 체코군단은 이후 1920년대 초 무기와 탄약을 북로군정서 등 한국 독립군에 넘기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시작했다고 올샤 전 대사는 밝혔다.

체코군단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와중 탄생한 부대다. 당시 체코는 슬로바키아와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식민지였는데, 강제로 징집된 체코인들은 지배국을 위해 같은 슬라브계 민족인 러시아와 싸워야 했다. 이에 전쟁 중 일부가 러시아에 투항하거나 귀순했는데 이들이 바로 체코군단이 됐다.

올샤 전 대사는 "체코 병사들이 사용한 총이 한국 독립군에 무료로, 또는 매우 저렴하게 매각된 수많은 사례가 밝혀졌다"면서 "한국 독립군은 이 무기들로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하는 등 충분한 전력을 얻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광복회장을 지낸 윤경빈 애국지사는 체코군단으로부터 구입한 무기들이 1940년대 만주에서 일본군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할 때도 여전히 사용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160쪽 분량의 사진집에는 이 밖에 1865년 발간된 최초의 체코어 백과사전에 소개된 한국으로부터 시작해 2020년 6월 프라하성에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설치까지 양국 간 150년간의 교류사가 담겼다.

김태진 주체코대사는 축사에서 "한국과 체코는 3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수교 역사에도 지속해서 협력을 강화해왔다"면서 "체코군단이 독립군에게 무기를 제공한 이야기나 체코언론이 3·1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일화는 양국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자유와 독립, 평화에 관한 열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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