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중남미서 활발한 '백신 외교'…영향력 확대 모색
미·유럽 등 자국민 백신 공급 집중하는 사이 중·러는 개도국 공략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남미 파라과이의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했다.
파라과이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통화 이후 아브도 베니테스 대통령은 트위터에 러시아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논의를 했다며 "지원에 감사한다"고 썼다. 파라과이엔 오는 18일 러시아 백신 4천 회분이 도착할 예정이다.
최근 "그라시아스(Gracias·'고맙다'는 뜻의 스페인어) 러시아"나 "그라시아스 중국"을 외친 중남미 정상은 파라과이 대통령만이 아니다.
중남미 각국에 속속 러시아나 중국 백신이 날아들고, 그를 전후해 정상 간의 통화도 잇따르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달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이튿날 푸틴 대통령과 예정된 통화를 했다.
그는 백신을 보내주기로 한 러시아의 결정에 감사하며, 푸틴 대통령을 멕시코에 초대했다고 말했다.
당시 일부 멕시코 언론은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그보다 며칠 전 이뤄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선 초청 언급이 없었다며 온도차를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벨라루스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스푸트니크 V 백신의 접종을 시작한 아르헨티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이달 초 푸틴 대통령과 통화했다.
통화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러시아의 백신 공급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러시아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중남미에서 러시아 백신을 승인했거나 공급받은 나라는 아르헨티나, 멕시코, 볼리비아,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이다.
처음엔 주로 러시아 우방인 좌파 국가들 중심으로 러 백신을 찾았으나 이젠 친미 성향의 우파 정부들도 예외가 아니다. 파라과이 우파 정부도 러시아 백신을 첫 백신으로 택했고, 칠레, 콜롬비아 등도 스푸트니크 V 백신 구매 협상을 했다.
중국 백신 역시 중남미에서 점점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브라질과 칠레, 멕시코, 페루 등이 시노백, 시노팜, 캔시노 등 중국 제약사의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했다.
루이스 라카예 포우 우루과이 대통령,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 등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고 백신 문제를 논의했다.
중남미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 외교'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전에도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린 중남미 공략에 공을 들였다. 특히 중국은 차관과 인프라 투자 등으로 중남미 내 영향력을 키우며 미국의 견제를 샀다.
코로나19 사태는 중국이 공략할 '빈틈'을 더욱 키웠다.
미국이나 유럽 서구 국가들이 백신을 선점하고, 자국 생산 백신을 자국민에 우선 공급하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백신을 개발도상국에 공급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중남미 국가들은 물량 확보가 상대적으로 쉬운 데다 가격이나 유통상의 이점도 있는 이들 백신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활용한 중국의 중남미 공략은 코로나19 초기에도 나타났다.
지난해 중남미 여러 국가가 중국산 마스크와 의료장비 등을 비행기로 실어 오며 중국에 고마움을 표시한 바 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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