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너무 올랐나…매물 쌓이며 가격 내린 단지 속속 등장
서울 전세물건 작년 10월 1만건에서 이달 2만2천건
"돈 급한 집주인이 수천만원씩 내려"…잠실엘스 84㎡ 15억원→12억5천만원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최근 상승폭을 줄이는 가운데 수도권에서 전셋값이 최고점을 찍고 하향 조정되는 단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몇 달 사이 수억원까지 뛴 전셋값을 맞추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면서 전세 물건이 쌓이고 있고, 자금 사정이 급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수천만원씩 내리면서 전셋값이 소폭 조정되고 있다.
다만, 전셋값이 이미 높은 수준으로 오른 상태인데다 하락세가 강한 것은 아니어서 전세난으로 인한 무주택자들의 고통이 단기간에 속 시원히 해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서울 전셋값 3주째 상승폭 둔화…품귀 빚던 전세, 물건 점점 쌓여가
1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0% 올라 3주 연속(0.13%→0.12%→0.11%→0.10%) 오름폭을 줄였다. 수도권 전셋값 역시 0.22% 올라 전주(0.23%)보다 오름폭이 둔화했다.
여전히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전셋값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수도권 입주 물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고가 단지 위주로 매물이 누적되고 있다고 부동산원은 분석했다.
실제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전세 물량은 점차 쌓이고 있다.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전세 물량은 전날 기준 2만2천169건으로 집계됐다.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작년 9∼10월 1만건 미만으로 크게 줄었던 것과 비교하면 물량이 크게 회복된 것이다.
작년 7월 4만건 수준이던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새 임대차법 시행 후 급감하기 시작해 10월 초 1만건 미만까지 줄었다가 11월 1만2천건, 12월 1만5천건, 올해 1월 2만건 등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역시 비슷한 추세로, 작년 8월(이하 11일 기준) 2만7천327건이던 전세 물건이 9월에는 1만5천976건, 10월에는 1만647건 등으로 줄었다가 11월 1만5천153건로 반등해 12월 1만9천808건, 올해 1월 2만2천409건, 이달 2만4천193건으로 점점 쌓여가고 있다.
◇ "급한 집주인이 전셋값 수천만원씩 내려"…도곡렉슬 84㎡ 18억원→16억원
매물이 쌓이며 오르기만 하던 전셋값이 최고점을 찍고 내린 값에 계약되는 사례가 서울과 수도권 전역에서 확인된다.
고가 전세가 많은 서울 강남권의 경우 서초구 반포동 반포리체 전용면적 59.9㎡가 이달 3일 보증금 11억5천만원(34층)에 신규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해당 평형은 작년 12월 12억4천만원(25층)에 최고가로 전세 계약이 이뤄졌는데, 이후 갱신 계약과 월세를 낀 보증부 전세를 빼면 처음 이뤄진 이 거래에서 1억1천만원 내린 것이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4.9㎡ 역시 이달 보증금 16억원(4층)에 전세 계약서를 써 작년 12월 18억원(15층) 최고가 계약 이후 2억원 낮은 값에 거래가 성사됐다.
송파구 잠실동 엘스 84㎡는 가장 최근에 체결된 신규 전세 계약이 지난달 26일 보증금 12억5천만원(9층)으로 확인되는데, 이는 작년 12월 최고가 거래인 15억원(13층)과 비교하면 2억5천만원 낮은 값이다.
강북권에서도 마포구 북아현동 두산 59㎡가 지난달 보증금 5억원(5층·8층)에 2건 계약이 이뤄진 뒤 이달 5일 4억5천만원(15층)에 비슷한 층이 계약되는 등 값이 5천만원 내렸다.
성북구 정릉동 풍림아이원 84㎡의 경우 지난달 23일 4억7천만원(11층)에 전세 계약이 이뤄져 지난달 초 5억원(15층) 수준을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3천만원 내려 전셋값이 다소 안정되는 분위기다.
마포구 아현동 R 공인 대표는 "우리가 봐도 전셋값이 너무 올랐지만, 4년 동안 전셋값을 못올리는 집주인들이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오른 전셋값을 대지 못하는 세입자가 늘어나면서 전세가 쌓이고 있고, 자금 사정이 안되는 집주인들이 집을 비워놓을 수 없어 몇천만원씩 내리면 거래가 성사되면서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1분기 수도권 입주 24%↑…'전셋값 안정세?' 전망 엇갈려
경기도 아파트 전셋값도 폭등 끝에 소폭 조정되는 분위기다.
작년 말부터 매맷값과 전셋값이 크게 오른 남양주시에서는 별내동 신안인스빌 84㎡의 경우 이달 8일 4억8천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해당 평형은 작년 상반기까지 보증금 4억원을 초과하는 전세 계약이 없었으나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오르기 시작해 작년 8월 5억원(20층)을 돌파한 뒤 12월 5억8천만원까지 오르며 폭등세를 보였다.
그러다 새해 들어 지난달 14일 보증금 5억4천만원(8층)에서 지난달 16일 5억원(5층), 이달 4억8천만원까지 내려가며 전셋값이 작년 8월 수준으로 진정되는 분위기다.
고양시의 일부 단지 사정도 비슷하다.
덕양구 동산동에 있는 동산마을22단지 호반베르디움 84㎡의 전세 거래를 살펴보면 지난달 30일 5억원(2층)에 계약되는 등 최근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해당 평형 전세는 작년 11월 6억1천500만원(15층)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12월 6억원(8·12·17층)에 3건 거래가 이뤄지며 소폭 조정됐고, 5억8천만원(10층)으로 재조정된 뒤 이달 5억원까지 떨어졌다.
5억원에 나간 전셋집이 2층으로 저층임을 고려하더라도 작년 11월 같은 층이 5억7천만원에 전세로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3개월여만에 7천만원(14%) 내렸다.
하남·수원·화성·용인·시흥·안양시 등 지역에서도 최고점 대비 최근 전셋값이 수천만원씩 떨어지며 5∼25% 내린 단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수도권 입주 물량이 다소 늘어나는 것도 전세난 해소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분기 수도권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5만4천여가구로, 작년 1분기(4만4천여가구)와 비교해 약 1만가구(23.7%) 늘어난다.
정부는 이런 환경을 강조하며 전셋값 안정을 기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비관론을 펴는 전문가들은 정부가 예고한 3기 신도시 및 수도권 공급대책 영향으로 청약을 기다리는 수요가 늘면서 임대차 시장에 머무는 전월세 수요가 많아졌고, 올해 재건축·재개발로 인한 이주 수요도 적지 않아 전셋값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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