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여왕, 보유주식 공개 안하려 법안 수정 로비 성공"(종합)
"사유재산 공개 자체가 당혹스럽다…1973년 정부에 수정 압박"
"여왕, 국영 유령법인 조성…정확한 재산 규모 공개된 적 없어"
(서울·런던=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과거 자신의 사유 재산을 대중에 공개하지 않으려고 관련 법안의 초안을 수정하기 위해 대정부 로비를 벌여 이에 성공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립기록물보관소에서 정부가 작성한 서류를 입수했다면서 이 서류엔 1973년 영국 왕실의 개인 변호사가 여왕이 보유한 주식 등 사유 재산을 공개하는 '기업 투명성 법안'을 바꾸려고 여러 장관을 압박한 내용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이런 '압박성 로비' 때문인지 정부는 이 법안에 '국가 지도부, 국영은행, 정부가 이용하는 법인에 대해선 정부가 재산 공개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했다.
가디언은 "1970년대 이뤄진 이런 법안 수정으로 영국 여왕은 자신이 소유한 기업 지분, 투자를 가리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국영 유령법인 1곳을 조성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기업 투명성 법안은 투자자가 차명이나 유령회사를 통해 상장 법인에 투자할 수 없도록 이사회가 지분의 실소유주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면 신원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영국 내각이 이 법안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투자처와 규모가 공개될 상황에 처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개인 변호사 매슈 파러를 주무 부처인 통상산업부에 급파했다.
파러는 통상산업부 관리들을 만나 여왕이 이 법으로 자신의 지분 소유가 이사회와 국민에 공개되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는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파러를 만난 통상산업부의 DM 드러커라는 관리는 "파러는 여왕의 재산이 의도치 않고 불순하게 사람들에게 유출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공개 자체가 당혹스러운 일이라는 이유로 (여왕의 뜻을) 정당화했다"라고 말했다.
1989년 영국 언론인 앤드루 모턴이 낸 책을 보면 이 법안이 의회에서 가결되자 1977년 여왕 소유로 추정되는 주식이 유령법인으로 이전됐다.
영국 여왕의 재산은 거액으로 알려지지만 정확한 규모가 공개된 적은 없다.
이 신문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정부 입법 법안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불가사의한' 영국의 입법 절차 탓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여왕은 법률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동의권(Queen's consent)을 행사해 '비밀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여왕의 동의권에 따라 법안이 의회에 회부되기 전 법안의 내용이 왕실의 특권이나 사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정부의 관계 장관은 여왕에 이를 사전 보고한다.
가디언은 "여왕의 동의권에 대해 왕실 홈페이지는 '전통으로 확립된 관습'이라고 설명하고, 헌법학자 사이에서도 영국의 입헌 군주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불투명하지만 무해한 왕실의 형식적 행사 중 한 사례로 보는 경향이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입수한 정부 서류를 보면 법안의 내용을 미리 볼 수 있는 이 동의권을 이용해 여왕과 그 변호사들이 법안 수정에 은밀히 개입할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옥스퍼드대의 헌법 전문가인 토머스 애덤스는 이 신문에 "가디언이 확보한 문서를 보면 여왕이 법률 제정에 행사한 영향력은 (일반) 로비스트에겐 꿈만 같은 일"이라며 "동의권 자체가 여왕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부여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관해 영국 왕실 대변인은 "여왕의 동의권은 '군주가 가지는 순수한 공식 입법절차'"라며 "여왕이 입법을 막았다는 모든 주장은 그야말로 부정확하다"라고 반박했다고 BBC가 전했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