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주의 또다시 가로막은 군부…질긴 '악연'

입력 2021-02-01 17:55
수정 2021-02-01 20:03
미얀마 민주주의 또다시 가로막은 군부…질긴 '악연'

1962년 쿠데타→1988년 민주화 시위 유혈탄압→1990년 민주진영 총선승리 불인정

민주화한다면서 군부 막강권한 적시한 '독소 조항' 헌법으로 언제든 쿠데타 가능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미얀마 군부가 1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국가 지도자들을 전격 구금하는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또다시 '미얀마 민주주의의 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작년 총선의 부정 의혹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민의로 선출된 정부를 향해 또 다시 총구를 들이댔다.

지난 1962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 진영과 질긴 '악연'이 또다시 재현된 것이다.

미얀마 군부의 정치 개입 역사는 지난 1962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네윈 육군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네윈은 대통령으로 철권통치를 자행했고, 이 과정에서 숱한 정치범들이 양산됐다.

수치 국가고문이 당시 15년 동안 가택 연금당한 것을 비롯해 10~20년 옥살이를 한 정치범들이 수두룩하다.

1988년 9월 민주화 운동 때에는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3천여 명이 숨졌다.

2007년 군정의 급격한 유가 인상으로 불거진 시위에서는 수백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수치 고문이 이끈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이 승리했지만, 군부 정권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치 고문에 대한 가택연금도 유지했다.

2008년이 돼서야 군정은 국제사회 압박을 의식, 민주화 일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향후 군부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 담긴 신헌법이라는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이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은 군부에 상·하원 의석의 25%를 사전 할당토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군부 힘을 축소하려고 해도 찬성표가 75%를 넘길 수 없어 개헌은 원천 봉쇄됐다.

군부는 또 헌법에 따라 내무·국방·국경경비 등 3개 치안 관련 부처의 수장을 맡고 경찰권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비상사태 때는 정권을 넘겨받을 수 있는 권한도 포함했다.

이번에 군부가 선거 부정을 정부가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며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이를 '악용'한 셈이다.



결국 이런 헌법 때문에 지난 2015년 총선에서 압승하며 53년의 군부독재를 종식한 뒤에도 수치의 문민정부는 군부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야 했다.

반세기 넘는 군부 정권 동안 군부가 주요 기업들까지 장악한 상황에서 문민정부는 협력을 얻기 위해 군부의 눈치를 과도하게 봐온 것도 사실이다.

2016년 10월 경찰초소 습격 사건을 빌미로 로힝야족 거주지역에서 군 당국이 저지른 '인종청소' 논란을 감싸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한 것이 대표적 예다.

위태로운 동거가 계속됐지만, 지난해 총선을 거치면서 양측은 관계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소수민족 정책 등에서 견해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군부 및 군부 연계 정당이 선관위에 불법선거 의혹을 거듭 주장했지만, 묵살당한 것도 자신을 스스로 미얀마 통합의 수호신으로 자처하는 군부에 빌미를 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정부가 총선 준비 과정에서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선관위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군부는 이날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비상사태가 끝날 시점에 새로운 총선을 실시해 승자에게 정권을 넘겨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부가 비상사태 기간 강력한 철권통치로 여론과 민의를 막을 경우, 새 총선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얀마 민주주의는 또 한 번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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