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합의 엿새 만에 택배 파업 선언…대화·양보로 파국 막아야

입력 2021-01-27 16:51
[연합시론] 합의 엿새 만에 택배 파업 선언…대화·양보로 파국 막아야

(서울=연합뉴스)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엿새 만에 파국 위기를 맞았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는 27일 택배사들의 합의 파기로 택배 노동자들의 분류 작업 투입이 여전하다면서 오는 29일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CJ대한통운·우체국·한진·롯데택배 등 주요 택배사의 파업이 현실화하면 물류 시장의 일대 혼란과 소비자 피해가 불가피하다. 도대체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합의문이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휴짓조각으로 전락할 정도의 위기가 발생한 것인지 어리둥절하고 답답하다. 이번 사회적 합의는 노·사·정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시민단체까지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으나 택배 노동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해결책은 아니어서 처음부터 갈등의 소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조는 택배사들이 지난해 10월 자체적으로 발표한 규모 말고는 추가로 분류 인력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태도인데다 노조의 면담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 등 사실상 합의를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CJ대한통운이 약속대로 분류인력을 4천 명 투입해도 여전히 15%의 택배 노동자는 분류 작업을 해야 하고 각 1천 명을 투입할 방침인 롯데·한진택배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무려 70% 이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택배사들은 분류작업 자동화까지 전담 인력을 투입하되 불가피하게 택배 노동자가 그 일을 하게 되면 적정 대가를 지급한다는 규정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합의문대로 국토부가 주관하는 거래구조 개선 작업 이후에는 분류인력을 추가로 투입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양측의 설명이 모두 맞는다면 지금의 갈등은 합의의 이행 속도에 관한 문제인 듯하다. 또 "과로사라는 중대 재해가 연이어 발생해도 문제 해결에서 법적 강제력이 있는 노사협약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사회적 합의에만 집중하게 된다", "택배사가 노조를 인정하고 분류작업과 관련해 택배사-노조 대표가 직접 만나 노사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등의 노조 측 발표로 볼 때 이번 기회에 노조의 대표성과 단체교섭권을 공식 인정받겠다는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합의가 도출된 지 채 일주일도 안 돼 갈등이 재연한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파국을 막고 상생과 타협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사측은 강제성이 떨어지는 사회적 합의라는 이유로 책임을 게을리해서는 곤란하다. 우리 사회에 공개적으로 한 약속인 만큼 좀 더 적극적이고, 속도감 있게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택배노조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직전인 지난 20∼21일 진행한 찬반투표를 근거로 총파업에 나서는 것도 적절치 않다. 지난 합의의 공식 명칭은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이다. 추가적인 사회적 논의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2차, 3차 논의에서는 택배비 인상, 택배노조의 단체교섭권, 택배 노동자의 분류 작업 투입 시 대가 산정, 작업 시간 제한 규정의 이행 방안 등 관련한 모든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갈등의 불씨를 없애야 한다. 하지만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총파업이다. 양측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한 발짝씩 양보해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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