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주역 텔레그램이 미국에선 극우세력 피난처

입력 2021-01-27 11:29
'아랍의 봄' 주역 텔레그램이 미국에선 극우세력 피난처

프라우드 보이스·트럼프 아들 가입해 지지층 결집

의회 난입사태 후 20일간 신규 가입자 2천500만명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 독재에 저항하는 데 텔레그램은 주요한 소통 통로였다.

이 때문에 러시아와 이란은 텔레그램 사용을 금지했고, 최근 벨라루스와 홍콩에서는 정부 탄압에 맞서 민주주의 저항 운동을 펼치는 도구로 활용됐다.



텔레그램 보안이 상대적으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텔레그램 사용자 지형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6일 미국 워싱턴DC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극우 성향의 음모론자와 인종차별주의자, 폭동 세력이 텔레그램으로 모여든 것이다.

불과 20일 사이 텔레그램 신규 사용자는 2천500만명을 기록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주요 소셜미디어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중단한 것처럼 극우 단체의 계정 역시 잇따라 퇴출당한 탓이다.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디지털 이민이다"라고 말했다.

극단적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두로프는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로 통한다. 지난 2013년 텔레그램을 개발한 후 러시아 당국을 피해 망명 생활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그동안 텔레그램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특징을 반영하면서도 억압받는 자를 위한 '피난처'라고 홍보한 두로프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NYT가 전했다.

실제로 두로프는 미국의 의사당 사태 초기 신규 가입자 증가를 반기면서 미국 소셜미디어의 일부 계정 중단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25일에는 텔레그램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폭력을 선동한 계정을 막았다고 공개했다.



또 신규 가입자 2천500만명 중 94%가 아시아와 유럽, 남미, 중동, 북아프리카 등에서 신청했으며, 미국은 2% 미만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해도 극우 성향의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는 텔레그램에서 교신하도록 지시했고, 이와 유사한 성격의 다른 단체에서도 가입자가 늘고 있다.

이전에도 텔레그램에 의도하지 않은 가입자가 늘어난 사례가 있다.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가 수년 전 단체의 트위터 계정이 막히자 텔레그램을 활용해 테러 공격을 계획하고, 정치 선동과 신규 회원 모집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당시 프랑스는 IS로부터 공격을 받자 텔레그램에 이들의 정보를 요구했지만, 두로프는 보안 정책상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텔레그램은 광고나 외부 투자 없이 거의 두로프 개인 자산으로 운영된다는 게 NYT의 설명이다. 서버를 세계 각국에 두고, 정부의 간섭을 철저히 배제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텔레그램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미 80만명이 '가짜 트럼프' 계정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들은 지난 22일 텔레그램 가입 사실을 알리고,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계정을 구독하도록 격려했다.

aayy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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